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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기자의 시각] 김광석도 '아니면 말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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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슬비 사회부 기자


2014년 5월 세월호 사고 직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본 이상호씨는 실종자 가족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흰색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이씨는 "'다이빙 벨(종 모양의 수중 구조 장비)'을 쓰면 20시간 연속 잠수 작업이 가능한데 정부가 막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투입된 다이빙 벨은 시신을 단 1구도 건지지 못했다. 구조 작업에 혼선만 초래했다.

구조 작업처럼 고도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분야는 일반인이 판단할 수 없는 전문가 영역이다. 구조·선박 분야 전문가들은 "사고 해역처럼 물살이 센 곳에서는 다이빙 벨은 무용지물"이라고 수차례 반대했다. 그러나 여론은 비전문가인 이씨가 인터넷 방송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제기하는 의혹에 끌려 다녔다. 정치인들도 가세했다. 결국 정부가 다이빙 벨 투입을 결정했지만 그 결말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비슷한 일이 3년 만에 또 반복됐다. 이씨는 지난 8월 30일 자신이 감독한 다큐 영화 '김광석'을 개봉하면서 '가수 김광석씨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이씨가 이 시점에서 왜 그 의혹을 제기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씨는 영화 개봉 직후 김씨 딸이 10년 전 사망했다는 사실을 폭로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씨는 "김씨가 아내 서해순씨에 의해 타살됐을 가능성이 있다. 딸도 서씨가 죽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씨의 개인사 등이 겹치면서 김씨와 딸의 타살은 진실처럼 받아들여졌다. 정확한 사인(死因)은 수사관이나 법의학자 등 전문가들이 가려야 한다. 물론 이들이 100% 진실을 가려내지는 못할 수 있지만 몇 가지 정황만 아는 일반인보다는 전문가들의 판단을 믿어야 한다. 그게 상식적인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이번에도 현직 국회의원들이 아무런 검증 없이 김씨 딸 사망을 다시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결국 경찰이 지난 9월 말 재수사를 시작했지만 두 달 만에 서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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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1일 오전 서울 중앙지검에서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왼쪽),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가수 고 김광석과 그의 딸 서연 씨의 죽음에 대해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관련해 재수사를 요청하는 고소, 고발장을 중앙지검에 이날 접수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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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머릿속에서 그려낸 허구의 주장과 맞아떨어지는 증거만 모아 의혹을 제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씨는 지난 9월 '영화에 서해순씨의 해명이 전혀 없다. 마녀사냥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영화는 표현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에"라고 대답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그가 이번엔 어떤 책임을 질지 두고 볼 일이다.

과학적 사실보다 거짓과 허구, 비(非)과학에 근거한 의혹 제기에 솔깃해 하는 세상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두 달여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광석 사건도 결국 '제2의 다이빙 벨' 사태로 끝났지만 잘못을 인정하거나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오죽하면 김광석씨 부검을 집도한 법의학자가 "의혹이 의혹을 부르고 확대하는 상황을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인지 걱정"이라고 한탄했겠는가. '혹세무민 방지법'을 만들자는 주장이 있다. 법도 필요하면 만들어야 하지만 시민사회 차원에서 엉터리 의혹 제기에 휘둘리지 않도록 자성해야 한다.

[이슬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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