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를 태우며
서는 것과 앉은 것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까
삶과 죽음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어느 해 포도나무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사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았습니다
우리는 건강보험도 없이 늙었습니다
너덜너덜 목 없는 빨래처럼 말라갔습니다
알아볼 수 있어 너무나 사무치던 몇몇 얼굴이 우리의 시간이었습니까
내가 당신을 죽였다면 나는 살아 있습니까
어느 날 창공을 올려다보면서 터뜨릴 울분이 아직도 있습니까
―허수경(1964~ )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사, 2016)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성경 구절이다. 다디단 여름의 포도송이를 죄다 건네주고 너덜너덜 늙어버린 포도나무 가지들은 다음 봄을 위해 잘리고 태워진다. 우리는 포도나무가 생기기 전의 시간과 포도나무가 태워진 이후의 시간을 알지 못한다. 열매를 맺고 서서히 말라가는 포도나무의 시간은 삶의 편에 '서' 있는 우리의 시간에 속한다. 우리의 시간은 우리가 생기기 이전과 우리가 사라진 이후의 사이다. 그리고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 이후 그 사이에 숨을 멈춘 채 타들어가는 시간이 있다. 그 사이를 무엇이라 부를까? 조문의 시간일까, 상실의 시간일까, 애도의 시간일까. '사이를 알아차린다는 건 사무치게 부재를 견뎌내는 일이겠구나' 생각하는 사이 가을 달이 지고 있다.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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