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제훈·2017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
이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초짜' 소설가지만 초고를 쓰고 나면 감히 만족한다. 일단 마지막 문장까지 쓴 것에 감사한다(물론 나중엔 그 문장이 존재조차 하지 않을 때도 있다). 내용이야 어떻든 일정한 분량을 채웠다는 게 스스로 대견하다. 꽤 잘 쓴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즐거움의 순간은 아주 짧다. 다음 날 다시 읽어보면 뭔가 삐거덕거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일부분만 거슬린다. 대사 혹은 문장 몇 개 정도. 그 부분을 며칠 동안 조금씩 바꿔 쓴다. 그러면 점점 좋아져야 할 텐데, 갈수록 이상해진다. 문장 몇 개가 문제가 아니라 문체가 소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요 없는 내용도 너무 많아 보인다. 인물이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정하고 쓴 것도 아닌데 인물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한다. 시간이 흐른 뒤에 머리를 쥐어짜면서 깨닫는다. "이거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잖아."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퇴고를 거치지 않는 소설은 거의 없을 것 같다. 한 문장을 고치든 한 문단을 고치든 다시 써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써야 할 수도 있다. 고치고 또 고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한다. 나 또한 그런 믿음을 가지고 다시 쓴다. 작품이 좋아지고 있는지 나빠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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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퇴고하듯 인생도 퇴고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실수한 일, 잘못한 일, 부끄러운 일… 왜 그랬을까 하는 순간이 너무 많다. 돌아갈 수 있다면 하나하나 뜯어고치고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과거로 돌아갈 순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또 하루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새로운 종이 한 장. 싫든 좋든 채워야 한다. 어제와 똑같을 수도 있고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그건 인생을 어떻게 퇴고하느냐에 달렸다.
[권제훈·2017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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