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학은 2014년 설립된 미국의 온라인 대학이다. 지난해 입학생 306명을 선발하는데 50개국에서 1만6000명이 몰려들어 화제가 됐다. 이 대학 학생들이 왜 한국에서도 구석진 이곳에 왔을까.
코비 앤더슨(20·미국)씨는 "소, 돼지, 닭으로 늘어나는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기 어렵다"며 "한국에 그 대안이 있다고 해서 직접 보러왔다"고 말했다.
농장 대표 강희주(50)씨를 따라 100㎡(약 30평) 크기의 '사육장'에 들어가니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 2000여 개가 어른 키 높이의 6층짜리 선반에 차곡차곡 놓여 있었다. 저마다 짙은 갈색 톱밥이 채워져 있다. 섭씨 26~30도로 유지되는 사육장은 실험실처럼 깔끔했다.
김씨가 상자 안에 손을 넣어 톱밥을 휘젓자 새끼손가락만 한 하얀 굼벵이(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 수십 마리가 온몸을 꿈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오 마이 갓!" 굼벵이를 처음 보는 외국 학생들은 고함을 질렀다.
버섯 전문가 강씨는 2014년부터 이곳에서 굼벵이를 기르고 있다. 버섯을 다 길러낸 참나무 톱밥에 미강가루, 사과 찌꺼기 등을 넣고 한 달 넘게 발효·숙성시키면 훌륭한 굼벵이 밥이 된다. 굼벵이 똥은 비료로 재활용해 버리는 게 없다.
곤충 농장 견학 온 세계 주요국 학생들 - 곤충이 차세대 대안 식품으로 각광받으면서 국내에도 곤충을 기르는 농장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국내 곤충 농장이 세계적인 방문 코스가 된 경우도 있다. 지난 4일 경기도 연천군의 한 곤충 사육장을 방문한 미국 온라인 대학 ‘미네르바 스쿨’ 재학생들이 식용으로 사용되는 굼벵이(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의 사육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최종석 기자 |
100㎡에서 길러내는 굼벵이는 한 달에 300㎏ 정도로 특별히 광고를 하는 것도 아닌데 하루에도 5~10통씩 주문 전화가 온다. 굼벵이에는 단백질 성분이 풍부해 간 기능에 도움을 준다(대한약전규격집). 동의보감에도 약재로 등장한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굼벵이가 혈액 순환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굼벵이 모양 그대로 말리거나 가루, 진액으로 가공하기도 한다. 굼벵이 가루를 섞어 만든 초콜릿도 판다. 자녀 몰래 먹이려고 굼벵이 가루를 사는 수험생 부모, 삼겹살과 같이 구워 먹으려고 생굼벵이를 주문하는 변호사도 있다. 강씨는 주변 굼벵이 농가 13곳과 함께 인터넷 매장도 준비 중이다.
◇곤충 농장 2000곳 넘어
강씨처럼 곤충을 기르는 농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12년 383곳이던 곤충 농장은 지난해 1261곳으로 4년 만에 3배가 됐고 올해는 2000곳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곤충 시장 규모는 2011년 1680억원에서 2015년 3039억원으로 커졌다. 농촌경제연구원은 2020년엔 5373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분야는 식용 곤충이다. 연구원은 2015년 140억원 수준이었던 식용 곤충 시장이 2020년엔 1236억원으로 9배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원은 "행사용(나비 등), 애완용(장수풍뎅이 등) 시장은 국내 시장에 한계가 있는 반면 식용 시장은 수출 등 성장 가능성이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식용 곤충 시장은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누에번데기,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굼벵이), 갈색거저리 애벌레(고소애), 메뚜기, 귀뚜라미, 장수풍뎅이 애벌레, 백강잠 등 7가지를 식품 원료로 인정하면서 쑥쑥 성장하고 있다.
적은 돈으로 창업할 수 있어 퇴직자들뿐만 아니라 청년들도 몰려들고 있다. 200㎡(약 60평) 규모의 사육사를 짓고 건조기 등 장비를 갖추는 데 1억~1억5000만원 정도 든다. 연구원 출신인 유태호(35)씨는 2015년 퇴사한 뒤 세종시에서 굼벵이를 키우고 있다. 빌린 땅에 8000만원을 들여 사육장을 지었다. 수입은 연구원 때보다 적지만 그는 "미래 식량으로 성장 가능성에 투자했다"며 "중국 대학에 유학을 다녀온 아내와 중국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식용 곤충 중에 몸값이 가장 비싼 것은 굼벵이다. 말린 굼벵이 1㎏이 50만원 정도다. 최근 기르는 농장이 늘면서 가격이 1~2년 사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소비자들 눈도 높아져 예전엔 한약재 시장에서 곤충을 사던 사람들이 직접 농장 환경을 확인하고 단골로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은 건강 식품으로 많이 팔리지만 각종 요리 재료로도 쓰인다. 한국식용곤충연구소 김용욱(41) 소장은 서울에서 곤충 에너지바, 쿠키, 셰이크, 머핀 등을 파는 카페 2곳을 운영하고 있다. 곱게 빻은 가루로 넣기 때문에 곤충이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주재료는 갈색거저리 애벌레(고소애)와 귀뚜라미, 굼벵이다. 그는 '식용곤충식 전문지도사 과정'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는데 수료생이 300명이 넘는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4년부터 열고 있는 식용 곤충 요리 경연대회는 다양한 곤충 요리의 실험장이다. 지난해엔 87개 팀이 경쟁을 벌였는데 메뚜기 두부 스테이크, 고소애 치즈케이크 등이 이목을 끌었다.
◇아직은 영세, 3곳 중 1곳 비닐하우스
하지만 최근 갑자기 많은 농가가 곤충 산업에 뛰어들면서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농가 대부분이 영세한 데다 판로를 확보하지 못해 폐업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농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사육장 규모가 200㎡ 이하인 영세 농장이 66%에 달하고 비닐하우스에서 곤충을 기르는 경우도 3곳 중 1곳(38%)이었다. 아직 곤충 식품에 대한 인식이 낮은 데다 식품 대기업들도 저울질하는 단계다. 강희주 대표는 "최근엔 은행원, 연구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노후 대비용으로 곤충 농장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며 "남들이 잘된다고 무작정 시작할 게 아니라 치밀한 준비와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최근진 종자생명산업과장은 "올해부터 곤충유통사업단을 만들어 농가들의 유통망 개척을 돕고 있다"며 "내년엔 수출연구사업단을 출범해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천=최종석 기자(com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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