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8시 부산 중구 부평동에 있는 부평깡통 야(夜)시장. 120m가량 길게 이어진 골목길은 수백 개 전등으로 구석구석까지 환하게 밝았다. 골목길을 가득 메운 수백 명의 인파는 우유튀김, 씨앗치즈호떡, 홍콩에그와플 등 독특한 먹거리의 매대(賣臺)앞에서 연신 주문하기에 바빴다. 이 야시장은 매일 오후 7시 30분부터 자정까지 열린다. 평일에는 약 3000명이, 주말에는 7000~9000명이 몰려온다. 일본 나고야에서 온 다카하시 신지(21)씨는 "이곳의 엄청난 에너지와 들썩이는 분위기에 흠뻑 빠졌다"며 "일본에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활기찬 한국 문화를 보려면 야시장을 가라고 추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해가 진 이후에 문을 여는 '야(夜)시장'이 전국 곳곳에서 전통시장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 4년 전 부평깡통시장이 국내 최초의 '야시장'을 연 이후 대구 서문야시장, 전주 한옥마을야시장, 경주 중앙시장야시장, 광주 1913 송정역야시장, 제주 서귀포 매일올레야시장 등 전국 각지에서 30여 상설 야시장이 생겨났다. 서울에서도 동대문, 청계천, 여의도, 반포 한강공원 등지에 주말에만 여는 야시장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야시장, 4년 만에 전국 30여 곳으로 늘어
부평깡통시장은 한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 활력을 잃어버렸다. 본래 이 시장은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인이 많이 거주한 부평동에 생겨, 해외 물품이 주로 사고팔리던 곳이었다. 한국 전쟁 때는 미군의 통조림이 대거 유통됐고 시장 이름에도 '깡통'이 붙었다. 베트남전쟁 때는 해외 수입품 전문 시장으로 전성기를 맞았지만, 1990년대 수입품 개방 이후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지난 3일 오후 8시 부산 중구 부평깡통 야시장을 찾은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다양한 먹거리가 전시된 매대를 구경하고 있다. 매일 오후 7시 30분부터 자정까지 열리는 이 시장은 평일에는 약 3000명이 방문하고, 주말에는 7000~9000명씩 손님이 몰려든다. /김종호 기자 |
2013년 시장 상인들과 부산광역시가 고민 끝에 찾은 대안이 대만 타이베이의 야시장을 벤치마킹하는 것이었다. 시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광복동 극장가에 몰려오는 젊은이들의 발길을 시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였다. 이곳 상인회는 골목 야시장을 깔끔하고 위생적인 곳으로 만들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방문객들은 철저히 우측통행을 하고, 쓰레기는 반드시 구매한 매대의 쓰레기통에 버리게 했다. 또 매대 위치를 매일 바꾸고, 매대마다 상인 이름과 사진, 휴대폰 연락처를 기재한 푯말을 달아둔다. 또 출석과 위생 규칙 준수, 쓰레기 관리 등 34개 항목을 자체 점검해 3회 위반한 업체들은 매대를 철수하는 '삼진아웃제'까지 실시하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부평깡통시장은 모두가 '흥겹게 놀 수 있는 핫플레이스(인기 장소)'로 거듭났다.
◇한옥 본뜬 매대, 남진의 흥겨운 노래… 색다른 즐거움이 무기
야시장을 열기만 하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부산의 한 전통시장은 2015년 야시장을 시작했다가 매출 부진으로 1년도 안 돼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김대웅(50) 부평깡통야시장 관리팀장은 "관광객도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교통 접근성과 도심 유흥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색다른 콘텐츠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손님들이 밤 시간대에 찾아오는 만큼, 편리한 교통편이 없으면 모객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부평깡통야시장은 부산지하철 1호선 자갈치역과 가깝고 근처에 공영 주차장도 있다. 전주 한옥마을야시장은 KTX전주역과 가깝고, 광주 1913 송정역야시장은 KTX광주송정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관계자는 "경주 중앙시장야시장처럼 천년고도 경주의 느낌을 살리려고 한옥형 매대를 만들거나, 목포 남진야시장처럼 가수 남진의 노래를 온종일 트는 식으로 뚜렷한 개성을 갖춘 야시장이 성공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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