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유통 기업인 리오단은 올해 초 서울에 근무하는 직원을 대상으로 '격주 주 4일제' 근무를 도입했다. 덕분에 직원 윤모(43)씨도 격주로 월요일은 쉰다. 대신 거의 매달 가족 여행을 간다. 11세, 7세 아이를 데리고 올해에만 전주·평창·거제도·통영 등 전국 각지를 돌았다. 여행을 가지 않을 땐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맞아준다. 윤씨는 "1박2일 주말여행을 다녀와도 다음 날 쉴 수 있어 부담이 적다"며 "주 4일제 이전과 이후의 삶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는 "가정이 화목해야 일에도 집중할 수 있다고 보고 제도를 도입했다"며 "직원 반응이 좋아 점차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주 4일제, 주 4.5일제 등을 도입하는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워라밸은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 Life Balance)'의 약자로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한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센터장인 김난도 교수가 꼽은 내년도 10대 키워드 중 하나다.
◇곳곳에서 주 4일·주 4.5일제 도입
충북 충주의 화장품 회사인 에네스티는 주 4일제를 안착시킨 대표적인 업체다. 2010년 한 여직원이 "일과 육아를 같이하기 어려우니 하루만 더 쉬게 해 달라"고 호소한 게 시작이었다. 지금은 모든 직원이 월요일부터 목요일만 일하고, 금요일엔 당직자만 출근한다. 일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경영 성과는 줄지 않았다. 2013년 85억원이던 매출은 작년 1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32명이었던 직원도 50여명 수준으로 늘었다. 연봉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고 다른 회사에서 에네스티로 이직해 오는 경우도 생겼다.
광고대행사 크리에이티브마스는 2014년 설립 당시부터 주 4일 출근제를 고집하고 있다. 월~목요일만 회사로 출근하고 금요일은 어디서 근무하든 직원 자유다. 크리에이티브마스 측은 "업무 강도가 센 광고 회사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려면 충분히 쉬어야 한다"고 했다.
경상북도는 아예 도 차원에서 주 4일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출연·출자 기관의 올해 신규 채용 직원을 모두 주 4일제 직원으로 뽑기로 했다. 경북테크노파크에선 이미 월~목요일 주 32시간만 일하는 직원 3명을 뽑았다. 임금은 다른 직원보다 20% 적지만 복지나 처우는 같다. 경북도 산하 한국국학진흥원,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 경상북도문화콘텐츠진흥원 등도 이미 주 4일 직원을 채용했거나 채용할 예정이다. 경북도 측은 "주 4일제로 채용하면 더 많은 사람을 뽑을 수 있다"며 "앞으로 주 4일제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외국에선 정착…한국서도 통할까
네덜란드와 덴마크·스웨덴 등 유럽에선 주 4일제가 정착돼 있다. 일본에서도 최근 몇 년간 주 4일제가 퍼지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주4일제 시행 기업은 전체 기업의 8%(2015년 기준)에 달한다.
주 4일제로 업무 집중도가 올라가면 근로자가 일과 무관한 잡담, 인터넷 서핑 등에 시간을 낭비하는 이른바 ‘공허 노동(empty labor)’을 없앨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단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정착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보고 있다. 장시간 근로가 정착된 한국 기업 특유의 문화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 뜻이다. 실제 여행 업체인 여행박사는 지난 8월부터 격주 주 4일제를 시범 도입했지만, 최근 월 1회로 줄이기로 했다. 고객 요청에 실시간 대응이 어려웠고, ‘다른 날에 업무가 몰려 피곤하다’는 직원 의견이 있었다. 또 공장을 돌려야하는 제조업체엔 적용이 쉽지 않다. 경기도 의회에선 김준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주 4일 정규직을 채용하는 공공 기관과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조례안을 발의했지만, ‘중소기업이 주 4일제를 도입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로 최근 심의가 보류됐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통계청 조사에서 ‘일을 (가정생활보다) 우선시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올해 43.1%로 관련 조사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50% 미만으로 떨어졌는데, 기업도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동훈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근로자가 자신에게 맞는 근로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한국은 외국에 비해 경직돼 있다”며 “주 4일제 성공 기업이 늘면 다양한 근로 형태가 도입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곽래건 기자(r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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