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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5 (수)

[friday] 1년 내내 황홀한 공연이 이뤄지는 이곳… 웅장하다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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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공연장 기행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세 개의 '마린스키' 극장

러시아만의 정취 가득

모스크바의 볼쇼이 오페라하우스… 신성한 기운 내뿜어

조선일보

모스크바 콘서바토리 볼쇼이 홀에서 차이콥스키 국립 아카데미 그랜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린 모습. / 박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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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훌륭한 음식도 아름다운 식기에 담아내야 파인 다이닝(fine dining ·고급)으로서의 식도락이 완성되듯, 훌륭한 공연도 그 격에 맞는 아름다운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에서 올려져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다. 러시아의 대표적 두 도시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는 서유럽에 못지않은 음악 인프라와 청중 규모를 갖추고 있는 고도(古都)로 1년 내내 황홀한 오페라와 발레, 콘서트가 펼쳐진다.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중요한 공연장도 많이 위치해 있다.

먼저 18세기 유럽을 고스란히 옮겨온 듯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어떤 공연장에서든 광활한 스케일과 러시아만의 정취, 원색적인 무대와 음악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음악이 끝난 뒤 밤 깊은 도시엔 러시아 특유의 화려한 조명과 강물이 일렁거려 공연으로 상기된 마음을 더욱 감미롭게 감싸준다.

이곳엔 세 개의 마린스키 극장이 모여 있다. 1860년 세워진 황실 극장으로 옥색을 자랑하는 '마린스키 히스토릭 스테이지', 2013년 세계 최고의 시설과 장비를 뽐내며 개관한 호박색의 '마린스키 II', 세계적 음향 전문가 도요타 야스히사가 음향을 맡아 2003년에 세운 '마린스키 콘서트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공연장들은 중심부인 네프스키 대로에서 약간 떨어져 있지만 최근 새로 문을 연 롯데호텔이 위치한 이삭 성당과는 가까운 편이다. 이 길을 따라 도시의 가을을 접하노라면 분수로 유명한 여름 궁전만큼이나 형형색색인 매력에 빠져든다.

특히 지난달 초 마린스키 히스토릭 스테이지에선 무소륵스키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가 펼쳐졌는데, 30여년 전 러시아의 세계적 영화감독인 알렉세이 타르코프스키가 제작한 무대가 절제된 미장센, 암전된 채 캐릭터와 하나 되는 절묘한 조명, 완벽한 구도와 맞물려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자아냈다. 여기에 러시아의 서정미를 뿜어내는 오케스트라와 현존 최고의 보리스 고두노프로 꼽히는 베이스 바리톤 예프게니 니키틴의 살아있는 연기, 위엄 있는 가창이 혼연일체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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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볼쇼이 오페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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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니콜라이 1세가 세운 '미하일로프스키 극장'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빼놓을 수 없다. 러시아 미술관, 필하모니아 홀과 예술광장에 이웃해 있는 890석의 이 작은 극장은 이 도시의 첫 오페라하우스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명(名)지휘자 파벨 클리니체프의 노련한 지휘, 신성(新星)으로 각광받는 발레리나 아나스타샤 소보레바의 탁월한 연기가 돋보인 발레 '돈키호테'가 상연됐다. 21세기 세계 최고의 음악 도시로 거듭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걸맞은 훌륭하고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고속 열차인 삽산을 타고 어머니의 강인 볼가를 지나 시대마다 다른 스타일이 공존하는 도시, 모스크바로 향했다.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과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가 리사이틀을 연 '차이콥스키 홀', 거장(巨匠)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와 차이콥스키 국립 아카데미 그랜드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함께한 '모스크바 콘서바토리 볼쇼이 홀',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 부파인 '수도원에서의 결혼'이 펼쳐진 '스타니슬라프스키와 네미로비치 단첸코 기념 음악극장'까지. 모스크바의 여러 공연장에선 러시아의 국보급 음악가들이 펼치는 심원한 향취, 그에 열광하는 모스크바 청중의 열기가 매일 밤 강렬히 뒤섞였다. 특히 '스타니슬라프스키와 네미로비치 단첸코 기념 음악극장'은 20세기 연출 이론을 정립한 콘스탄틴 스타니슬라프스키의 명성에 어울리게 모던한 디자인과 현대적인 연출이 조화를 이뤘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이 여성적이고 아담하다면, 모스크바의 '볼쇼이 오페라하우스'는 남성적인 웅장함과 신성한 기운을 내뿜는다. 신비롭고 이국적인 인도 황금 제국이 배경인 발레 '라 바야데르'를 올리기에 딱 좋은 무대. 마침 최고의 발레리나로 꼽히는 스베틀라나 자하로바가 주역으로 출연해 시종일관 압도적인 테크닉과 성숙한 연기로 엄청난 크기의 볼쇼이 무대를 황금빛 열기로 달궜다. 상대역으로 세계 최고의 미남 발레리노 데니스 로드킨이 등장해 청중의 환호가 더 오래 이어졌다. 유독 가을이 짧아 더 아름다운 러시아의 가을만큼이나 러시아의 공연장들은 찰나의 감동과 고색창연한 색채로 물든 추억을 남겼다.



[박제성·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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