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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5 (수)

[ESC] 인디애나 존스처럼···백룡동굴 탐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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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커버스토리

수십만~수백만년 전 형성된 석회동굴

여느 동굴과 달리 조명·안내판·장식물 없어

남근 닮은 종유석 접착제로 복원하기도

국내 유일 탐험형 동굴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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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백룡동굴. 조명시설이 없어 미지의 동굴을 탐험하는 느낌으로 종유석·석순·석주 등 화려한 동굴 생성물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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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유석·석순·석주·석화…. 시간이 물을 만나 깊은 어둠 속을 함께 흐르고, 흐른 끝에 빚어낸 신비로운 동굴 생성물들이다. 1년에 0.1㎜씩 쌓이고 자라나서 이뤄졌다는 경관이다. 이 아름다운 경관을 우리가 보게 된 건, 그것들이 그토록 오랜 시간을 완전한 어둠과 적막 속에서 성숙해온 덕분이다.

국내에 멋진 석회암동굴·용암동굴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 동굴 경관의 진수를 완벽한 어둠과 함께 누릴 수 있는 곳이 있다. 강원도 평창 백운산(883m) 자락의 백룡동굴이다. 갖가지 조형물과 색색의 조명으로 장식한 여느 동굴들과 달리, 조명도 안내판도 장식물도 없이 최소한의 탐방로만 마련해 공개한 국내 유일의 탐험형 동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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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동굴의 종유석과 석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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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약서에 서명해주세요.”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문희마을의 백룡동굴탐방센터. 탐방을 신청하자 직원은 서약서부터 내밀었다. 인솔자의 안내에 따르지 않거나, 동굴 생성물 훼손 때 ‘퇴굴 조처’한다는 내용이다. 9살 미만과 65살 이상은 탐방을 제한한다는 문구도 있다. 그만큼 험하고 또 소중한 동굴이란 얘기다. 왜 탐사복에 장화·장갑, 전등 달린 헬멧을 갖춰야 하고, 왜 카메라·휴대폰 등 개인 물품 지참을 금지하는지 2시간가량 동굴 탐험을 하고 나면 이해가 간다.

백룡동굴은 4억5000만년 전 형성된 석회암층이 1억년 전쯤 바다에서 융기해, 오랜 세월에 걸쳐 물이 스며들며 석회암층을 녹인 끝에 만들어진 동굴이다. 수백만년 전쯤 동굴이 형성됐고, 수십만년 전부터 종유석·석순·석주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이 만들어지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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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맺힌 작은 종유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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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만 알고 드나들던 이 동굴은 1976년 주민들(당시 고교생이던 정무룡씨 형제 등)이, 내부의 또 다른 공간을 찾아내면서 본격 조사가 이뤄졌다. 1979년 천연기념물(260호)로 지정됐고, 2010년 일반에 개방됐다. 1회 20명 이내로 하루 최대 240명까지, 안내자 인솔 아래 탐방이 이뤄진다. 동굴 이름 ‘백룡’은 백운산과 정무룡씨 이름에서 한 자씩 따와 지은 것이다. 탐방료는 어른 1인 1만5000원, 어린이·청소년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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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동굴탐방센터에서 동굴 입구까지는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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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입구는, 백운산 남쪽 자락을 감싸고 도는 동강 물길에서 15m 위 절벽에 있다. 탐방센터 옆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500m쯤 이동해야 한다. 애초 절벽에 설치한 통로를 따라 입구까지 이동했으나 낙석이 잦아 폐쇄했다. 전체 길이 약 1.87㎞인 백룡동굴은 중심 굴인 A굴(785m)과 B굴(185m), C굴(605m), D굴(300m) 3개의 가지굴로 이뤄졌다. 탐방할 수 있는 곳은 주굴인 A굴이다. 나머지 굴은 지형이 매우 복잡하고 위험 구간이 많아 개방하지 않고 있다. 동굴 내부 기온은 연중 13도 안팎이다.

동굴로 들어서면 먼저 온돌·아궁이 유적을 만난다. 안에 있던 숯을 연대 측정하니 1800년쯤의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한 해다. 누군가 피신해 와 있었거나, 사냥꾼 또는 심마니들이 머물렀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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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동굴의 온돌 유적. 뒤쪽에 동굴 입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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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굴인 B굴 갈림길을 지나면서 천장과 벽면으로 본격적인 동굴 생성물 경관이 펼쳐진다. 종유석·석순들이 가득 찬 동굴의 공기는 갈수록 습해지고, 다랑논 형태의 휴석 무리와 물웅덩이도 나타난다. 물웅덩이를 랜턴으로 비추자 작은 새우들이 보였다. 동강 물이 유입되면서 들어와 갇힌 뒤 눈이 완전히 퇴화했다는 아시아동굴옆새우다.

안내자 김도현씨가 작은 구멍 앞에서 말했다. “이게 개구멍이다. 입구에서 210m 지점이다. 여기까지는 기존에 알려져 있던 굴이어서 훼손이 심한 편이다. 개구멍을 지나야 동굴의 진면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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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동굴의 ‘개구멍’. 비좁은 틈을 통과해야 하는 구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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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멍’은 1976년 정무룡씨 형제 등이, 주먹만한 구멍에서 바람이 쏟아져 나오고 박쥐가 드나드는 걸 이상하게 여겨 조금씩 파내 뚫은 구멍을 말한다. 온몸에 진흙을 묻히며 개구멍을 통과하자, 정말 경관이 달라진다. 보이는 곳마다 크고 작은 종유석·석순·석주·유석 들의 숲이다. 거대한 고드름들을 연상하게 하는 종유석 행렬과, 빼곡하게 늘어선 석주·석순 무리가 헤드랜턴을 비출 때마다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길을 가로막는다. 가늘게 늘어진 종유관들의 끝에는 반짝이는 물방울이 맺혀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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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유석들이 대형 고드름 무리처럼 발달한 모습. 이른바 ‘피아노 종유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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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유석·석순 중에는 남근을 닮은 것도 있고 유방을 닮은 것도 있다. 그중에서도 남근을 빼닮은 종유석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바로 1997년 지역 경찰서장 일행에 의해 반출됐다가 회수돼, 접착제로 붙여 복원하며 유명해진 남근석이다. 길이 43㎝, 둘레 18㎝의 멋진 남근석이다. 봉합이 잘 이뤄져 더 커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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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동굴엔 남근을 닮은 종유석도 많다. 사진 위쪽에 반출됐다 회수돼 복원한 남근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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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리고 기어서 굵고 짧고 가늘고 긴 석주·석순들 사이를 지나, 물길 건너 다시 진흙 바닥을 기어가며 도착한 동굴 끝 지점의 대형 광장(약 1000㎥)이 압권이었다. 거대한 벽면마다 늘어지고 흘러내리고 솟은 생성물이 만물상을 이뤄 거대한 벽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안내자 김씨가 모든 불빛을 끄도록 했다. 완벽한 어둠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이 이어졌다. “빛과 눈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란다. 동굴 안에선 수천, 수만 년씩 이런 정적과 어둠이 이어졌을 것이다. 김씨가 동굴 광장 구석의 흐릿한 조명등을 켜자 다시 벽화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동굴에서 유일하게 마지막 광장에만 일시적으로 밝히는 조명시설이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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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동굴 끝 광장에서 볼 수 있는 달걀부침(에그프라이) 모양의 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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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선 여러 인물·동물상 형태의 유석들과 달걀부침(에그 프라이) 형태의 석순, 종유석이 떨어져 박혀 석순처럼 보이는 위석순도 볼 수 있다. 김씨가 동굴 천장의 검은 부분을 가리켰다. “박쥐들이 매달려 있던 자리”다. 그 밑에 쌓인 검은 흙더미는 박쥐의 배설물이다. 동굴 속 생태계가 유지되는 중요한 자원이라고 한다.

다시 엎드리고 기어 돌아 나오면서 운 좋게, 작은 관박쥐 한 마리와 가늘고 긴 등줄노래기 한 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박쥐는 보통 동굴 깊숙이 숨어 있기 때문에 탐방객 눈에 띄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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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동굴에서 만난 등줄노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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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밖으로 나와 보니 옷도 장화도 장갑도, 그리고 취재 허락을 받아 들고 들어갔던 카메라까지 온통 흙투성이다. 하지만 때 묻지 않은 자연 동굴의 제 모습을 제대로 구경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2시간이 걸렸다.

백룡동굴 탐방센터가 있는 문희마을은 백운산 등산로 입구이면서, 유려한 동강 물줄기를 내려다볼 수 있는 칠족령 트레킹 코스의 출발점이다. 백운산 산행엔 왕복 4시간 이상 걸리지만, 백운산 남쪽 자락의 고갯길인 칠족령까지는 왕복 1시간30분(1.6㎞ 거리)이면 된다. 늦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완만한 오르막 오솔길이다. 칠족령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정선 쪽에서 흘러와 영월과 평창 경계를 이루며 굽이쳐 흐르는 동강 물줄기와 탁 트인 산줄기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반대편 산길로 내려서면 정선 제장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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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강민물고기생태관에 전시된 길이 1m20의 대형 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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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마을 들머리, 마하리 본동마을에 있는 평창동강민물고기생태관에도 들러볼 만하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동강에 사는 천연기념물 어름치와 황쏘가리를 비롯해 쉬리·꺽지·미유기·배가사리 등 한국 고유어종들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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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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