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문제집 7권 풀어야 합격한다는 GSAT… 삼성, 진짜 스타트업처럼 움직이고 싶다면 채용 바꿔야
모든 전화기는 휴대폰이다.
어떤 플라스틱은 전화기이다.
① 모든 플라스틱은 전화기이다.
② 모든 휴대폰은 플라스틱이다.
③ 모든 플라스틱은 휴대폰이다.
④ 어떤 플라스틱은 휴대폰이다.
⑤ 모든 전화기는 플라스틱이다.
삼성 GSAT을 치고 퇴실하는 수험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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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직무적성검사(GSAT)의 기출 문제다. 22일 삼성 그룹의 하반기 신입 공채를 위한 GSAT이 치러졌다. 서울 강남구 단대부고 등 전국 5곳의 고사장, 미국 뉴욕과 LA의 고사장에서 수만 명이 시험을 쳤다. 미래전략실은 해체됐지만 삼성의 GSAT은 살아남았다. "계열사의 그 많은 수험생을 걸러낼 시험을 각자 개발하려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다.
응시생들은 이런 언어논리 분야의 30개 문제를 포함해 수리논리(20개), 추리(30개), 시각적 사고(30개) 및 직무상식(50개) 등 모두 160개 문제를 2시간 30분 동안 푼다. 기출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수학능력시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의 신제품과 신기술에 대한 상식을 묻는 질문이 좀 추가되는 정도다.
어떤 사람이 GSAT을 잘 볼까. 취업 카페에선 삼성 공채 합격생들의 조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단 맞춤 학습은 필수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인터뷰한 한 합격생은 “GSAT은 따로 준비하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GSAT 대비용 문제집과 학원은 봄ㆍ가을 특수가 대단하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한 합격생은 GSAT 문제집을 7개나 풀고 시험에 합격했다. 반복 학습도 중요하다. 한 취업 카페에서 삼성 합격생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기출 문제를 계속 반복해 푸는 연습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 시험으로 과연 삼성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뽑을 수 있을까. 반복적 업무와 단순한 사고는 인공지능이 대신해줘서 문제해결 능력과 창의력이 극단적으로 중요해진다는 시대 말이다.
삼성 관계자들도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구시대적 채용 시험을 계속 볼까. “채용 방식을 크게 바꿔보려고 했죠. 몇년 전엔 총장 추천제 도입도 검토하고. 그때 대학 줄 세운다는 비난이 너무 거세서….”
미국 정보기술(IT) 업체들처럼 수시ㆍ경력 중심, 역량 면접 중심의 채용 시스템은 왜 도입하지 않을까. “대졸자들에겐 신입사원 공채가 동아줄 같은 거잖아요. 저번에 한 계열사가 상반기 공채 건너뛰었다가 어찌나 여론 몰매를 맞았는지….”
그렇다고 이런 객관식 시험으로 인재를 뽑아야 할까. “시비를 없애려면 객관식이 가장 확실하죠. 다른 방식으로는 ‘금수저만 뽑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늘 따라다녀요.”
사회적 지탄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내놓은 해법이 결국은 수학능력시험의 재탕이라는 것이다.
올 초부터 '미래직업리포트'라는 기획 기사를 취재하며 다양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미래 인재상을 고민하고, 다양한 채용 시험을 하고 있었다. 1위 배달앱인 '배달의민족'을 내놓은 우아한형제들은 문학 작품을 연계한 자기 소개서로 창의성을 진단하고 있었다. 1위 송금앱 '토스'의 비바리퍼블리카는 모든 직군의 직원에 대해 관련 업무를 직접 시켜 역량을 평가하고 있었다.
삼성은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지난해 "스타트업의 DNA를 심자"며 뉴삼성을 기치로 내건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GSAT이 유지되는 한 진정한 미래형 인재를 뽑기는 힘들 것이다. 국내 대표 대기업의 미래도 그렇지만, 문제 풀이 연습에 내몰린 대학생들이 더 우려스럽다.
임미진 산업부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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