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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글로벌 포커스] 북한은 왜 핵무기에 목을 맬까 … 네 가지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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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 지원 같은 당근으론

북의 핵개발 집착 바꿀 수 없어

엄청난 대가 치를 것이라는 걸

한·미·일 힘 모아 명심시켜야

중앙일보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북한에 대한 예방 타격(preventive strike)이 필요한가’와 ‘북한을 외교의 대상으로 삼는 게 가능한가’에 대해 논의하려면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려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선행돼야 한다. 이 질문을 다루는 전문가는 의외로 많지 않다. 우선 북한이 핵무기를 바라는 이유에 대한 가설 중에서 두 가지는 버려야 한다.

첫 번째는 ‘북한이 핵무기를 대미(對美) 협상 카드로 삼으려 한다’는 가설이다. 평양이 핵을 워싱턴과의 협상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면 이 가설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20여 년간 비핵화 약속을 꾸준히 어겨 왔다. 핵보유국이 되기 위해 2012년 헌법까지 바꿨다. 김정은 정권은 경제발전 등 다른 국가적 목표를 위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한마디로 협상 대상이 아니다. 향후 북한 정권이 핵무기 포기를 결정할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현 국면에서는 아니다.

버려야 할 두 번째 가설은, 북한이 핵을 포기했던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의 비참한 종말이나 이라크전쟁을 목격하고 핵 개발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이라크전쟁과 카다피 사례가 핵무기에 대한 북한의 집착을 강화했는지는 모르지만, 근본 원인은 아니다. 두 사례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에 착수했다는 증거가 있다.

이 두 가설을 제거하면 북한의 핵무기,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대한 네 가지 설명이 남는다.

중앙일보

글로벌 포커스 10/20


첫째, 미국을 억지(抑止)하기 위해서다. 북한은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의 가공할 만한 공군력을 맛보았다. 김일성은 또한 미국이 베트남전쟁 때 지상군의 북베트남 투입을 꺼리는 걸 목격했다. 핵무장을 한 중국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핵무기는 미국의 한국 방어 계획과 공군력 전개에 혼선을 주는 게 큰 목적이다.

둘째, 중국을 억지하기 위해서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뒤 미 심문관들은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한 시늉을 한 이유를 후세인의 참모들에게 물었다. 그들의 답인즉 “후세인은 이라크의 앙숙인 이란에 자국 군사력의 취약점을 감추고 싶어 했다”는 것이었다. 이란을 경계하기 위해 미국과의 전쟁 위험까지 감수한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북한 은 중국이 북한을 흡수하거나 붕괴시키는 것을 저지할 억지력이 필요하다.

셋째, 조선인민군을 억지하기 위해서다. 북한군은 재래전으론 북한이 진다는 것을 안다. 군의 충성을 유지하려면 핵무기가 필수적이다. 김정일의 선군(先軍) 정책은, 북한군의 전쟁 수행 능력이 갈수록 감퇴한다는 현실, 그럼에도 군이 궁극적인 무력의 원천이라는 북한 내 인식을 반영한다.

넷째, 한국을 고립시키기 위해서다. 한국은 국력의 모든 지표에서 북한을 압도한다. 통치 정당성이 필요한 김정은 정권은 북한이 한국보다 우월한 유일 상징인 핵무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또한 ICBM으로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은 워싱턴과 서울을 이반시킬 빌미를 제공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미국의 보호 없이 단독으로 북한과 맞서야 한다. 북한은 또한 핵무기로 한국 경제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 북한은 궁극적으로 무력을 써서 북한 주도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지 모른다.

이런 가설들을 종합하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다른 권위주의 정권이라면 핵을 포기하는 대신 경제발전으로 생존과 정당성을 모색할 수 있다. 북한은 아니다. 미국의 최우선 전략은 북한이 핵무기를 추구하면 미증유의 대가를 치른다는 걸 납득시키는 일이다. 한국 방어에 대한 미국의 의지가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된다는 것도 알려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과 ‘동결 대(對) 동결(freeze-for-freeze)’ 합의를 추진하자고 제안한다. 그런 합의는 역효과만 낳을 것이다. 한·미 국방 공조가 약화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떼어놓을 수 있다고 오판할 것이다. 미국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외교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평양의 이러한 전략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게 최선책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제재와 한·미 그리고 한·미·일 국방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 북한의 계산이 바뀌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북한이 핵 개발을 결심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바로 내일 핵무기를 포기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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