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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조영남 ‘그림 대작’ 유죄…역사 속 미술사는 어떤 판결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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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씨 대작의혹 사건의 대작그림 가운데 하나로 검찰이 제시한 '병마용갱'이다. /사진=[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서지경 기자]‘그림 대작(代作) 논란’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조영남(71) 씨는 ‘조수가 작품을 그리는 것은 미술계 관행’이라고 항변했다. 앞서 조 씨는 무명의 대작 화가가 그린 그림에 일부분을 덧칠하고 자신의 사인을 넣어 수백만 원에 판매한 사기죄 혐의에 기소됐다. 다수의 매체에서 그가 주장한 ‘미술계 관행’에 문제 제기 또는 인정하는 등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대작을 하는 것은 미술계 관행으로 존재했지만, 재판부가 조 씨의 대작에 대한 입장은 달랐다.

미술계에서 저명한 화가의 조수가 화가의 작품을 대신 그리는 것은 미술사를 거슬러 올라가 르네상스 시대에도 존재했다. ‘그리스도의 책형’ ‘십자가의 그리스도’ 등 대표작을 만든 르네상스 시대 독일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1472~1553년)는 그의 작품을 원하는 많은 고객을 위해 많은 조수과 함께 가내수공업 공장과 같은 공방에서 공동 작업을 했다.

바로크 시대 유럽 화가 피테르 파울 루벤스 (1577~1640년) 역시 공장형 작업실과 같은 곳을 운영하여 생전에 3천여 점의 다작을 남겼다. 그의 작품 중 ‘루벤스 스튜디오’라는 작명으로 집단 창작을 명시한 서명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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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이미지출처=연합뉴스]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외부인에게 맡기는 전통은 현대 화가들에게도 이어졌고, 이는 현재 자본주의와 맞물리며 예술작품의 생산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이라 여기는 개념미술 이끈 대표적인 현대 화가는 프랑스 화가 마르셀 뒤샹(1887~1968)이다. 뒤샹은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진 평범한 소변기를 ‘샘’ 명명하여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었고, 그가 예술계에서 인정을 받으며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었다.

이후 현대화가 팝아트 선구자 앤디 워홀(1928~1987), 무라카미 다카시(55), 데미안 허스트(52) 등은 예술에 자본주의적인 생산방식을 도입했고, 일명 ‘공장형 아티스트’가 등장했다. 이 화가들은 대규모의 조수들이 있는 공장형 스튜디오를 운영해 이 사실을 세간에 공개했다.

대표작 ‘스팟 페인팅’을 만든 화가 데미안 허스트는 뉴욕 가고시언 갤러리에서 열렸던 전시 오프닝에서 “여기 전시된 그림 중 내가 그린 것은 단 한 점도 없다”고 공언했다. 데미안 허스트의 조수였던 화가 데일 루이스도 어느 인터뷰에서 “허스트는 자기 작품에 손도 대지 않았다. 작품이 완성되면 와서 서명만 했다”고 말했다. 대표작 ‘메릴린 먼로’ ‘코카콜라 병’을 만든 팝아트 선구자 앤디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을 ‘Factory(공장)’라 불렀다.

조영남의 ‘대작’ 사기 혐의에 유죄를 선고한 이강호 판사는 조수와의 분업·협업이었던 성행한 ‘미술계 관행’에 대해 “비록 피고인이 제작과정에서 아이디어나 소재를 제공하고 마무리 작업에 관여했다 해도 대부분의 창작적 표현 과정은 다른 사람이 한 것”이라며 “이런 작품을 자신의 창작적 표현물로 판매하는 거래 행태는 우리 미술계의 일반적 관행으로 볼 수 없다”고 양형의 이유를 밝혔다. 이번 판결로 미술계에서 그동안 이어져온 ‘조수와의 협업’에 비판적 시각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이어 선고에 앞서 “피고인이 그림 구매자들에게 이런 사실을 숨긴 것은 기망(속임)에 해당한다”며 “국내 미술계 관행과 현대미술 작품의 거래 실태 등을 충분히 경청하고 반영했고, 이 판결이 향후 미술계 또는 예술계에서 일어날 작품 거래와 관련해 생길 문제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미술계에서 그동안 이어져온 ‘조수와의 협업’에 비판적 시각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서지경 기자 tjwlrud25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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