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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사제지간' 맺고 시세조종으로 78억원 부당이득 취득한 '주식 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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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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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상한가 굳히기’ 수법으로 주식 시세를 조종해 5년간 78억원을 부당취득한 조직이 검찰에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전업 투자자인 ‘스승’ 권모씨(43)를 중심으로 사제지간을 맺고 서로‘스승’, ‘제자’, ‘고수’ 등으로 부르며 시세조종 기법을 공유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시세조종 대상으로는 개미투자자가 몰리는 ‘정치인 테마주’ 등을 주로 선정해 공략했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금융조사제1부는 ‘상한가 굳히기’ 주가조작 기법으로 78개 종목의 주식을 시세조종해 78억여원의 부당이익을 취득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시세 조종을 주도한 권씨 등 8명을 구속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검찰은 또한 시세 조종에 참여한 조직원 가운데 10명은 불구속 기소했고, 1명은 필리핀으로 출국한 것이 확인돼 기소중지했다.

권씨 등은 2012년 5월부터 지난 2월까지 총 78개 종목을 시세 조종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풍문에 따라 개인 소액 투자자들이 몰리고 주가가 급등락하는 ‘정치인 테마주’ 등 종목을 골랐다. 이상매매가 포착된 78개 종목 가운데 32개는 대선 후보 등 유력 정치인과 유명인 관련 테마주이고, 9개 종목은 국가 정책과 관련된 테마주였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들은 시세 조종 후 차익으로 한 종목당 1억원~1억5000만원을 부당 취득했다.

이들의 시세 조종에는 ‘상한가 굳히기’ 수법이 사용됐다. 이는 특정 종목을 선정한 다음 상한가를 형성하기 위해 고가매수 주문, 물량소진매수 주문, 허수매수 주문 방식을 모두 동원하고, 일단 상한가가 형성되면 이를 유지하기 위해 ‘상한가 매수 주문’을 계속 제출해 상한가를 굳히는 방식이다. 이후 주식을 한번에 팔아치워 차익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이들이 총 78억여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합법적 매매 방식인 ‘상한가 따라잡기’와 달리 ‘상한가 굳히기’는 상한가가 형성되기 전에 허수매수 주문이나 물량소진 매수 등 이상매매를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들이 5년 동안 거래한 1000여개 종목을 살펴본 후 정상적 방식으로 거래한 것을 제외한 78개만 추려냈다고 밝혔다.

권씨는 ‘스승’ 또는 ‘사부’로 불리면서 주가조작을 지휘했다. 1998년부터 특정한 직업 없이 주식투자를 전문으로 해온 권씨는 단골 당구장, 주점 등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주식 투자 얘기를 나누다가 “저도 배우겠다”는 사람이 줄을 잇자 조직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같은 대학 동기들 여럿이 함께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최근 취업한 1명을 제외하고 따로 직업이 없이 주식 투자를 하며 생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기법 전수는 도제식으로 이뤄졌다. 권씨의 시세조종 기법을 잘 따라하는 ‘제자’는 ‘고수’라고 불리면서 신입 ‘제자’와 일대일로 짝을 지어 교육을 실시했다. ‘고수’ 가운데 한 명이 권씨의 어록과 매매기법 등을 교재로 만들어 공유하면서 이론교육에 활용했다. 권씨가 특정 종목을 선정하고 매수·매도를 지시하면 ‘고수’들은 네이트온 메신저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등을 통해 다른 ‘제자’들에게 매매 주문을 넣도록 지시하고 관리·감독했다.

투자금은 각자 운용했지만 이들은 수익 가운데 일부를 공동관리자금으로 운용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경제공동체를 꾸렸다고 검찰은 전했다. 조직원들은 매일 손익을 정산해 수익이 나면 일부를 공금으로 냈다. 이익을 많이 본 경우 3억원까지 공금을 낸 사람도 있었다. 이처럼 거둬들인 공금으로 일부 조직원의 손실액을 보전해 줬기 때문에 조직원들의 탈퇴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번에 붙잡힌 19명의 조직원은 해외로 출국한 1명을 제외하고는 2012년부터 꾸준히 권씨와 함께 활동해 왔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주식 이상매매가 있다는 통보를 접수하고 수사를 진행해 왔다. 검찰 관계자는 “거액의 자금을 사채에서 끌어들이던 예전의 시세조종 방식과 달리, 요즘은 다수의 소액 투자자가 모여서 각자의 이익을 위해 조직을 이뤄 범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범죄 수익을 환수하기 위해 권씨 등이 주식투자에 사용한 차명 계좌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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