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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의료의 미래] 의료기록 환자에 돌려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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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한 교수의 4차 산업혁명과 의료의 미래 ◆

매일경제

우리나라는 인구 7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인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노인 의료비는 전체 인구의 3배 정도 높다. 이제 우리 모두의 '건강수명'을 늘리는 것 이외에는 의료자원의 고갈을 막을 수 없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아직 한 가지 의료자원이 남아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건강 자율관리 공동체는 셀프서비스로 음식 가격을 낮추고 자원 재활용으로 환경을 살리듯이, 의료비 급증을 막고 우리의 건강수명을 늘릴 유일한 대안이다. 하지만 음식이나 재활용과 달리 의료서비스는 복잡하고 의료용어는 어렵다. 의료 4차 산업혁명은 스마트폰과 건강정보와 인공지능의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가부장적 의료부권주의(Medical Paternalism)에 따르면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환자에게 최선이고, 의사는 결코 환자를 나쁘게 하지 않으므로, 환자는 의사의 결정과 지시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 응급상황, 의식불명이나 수술대에 놓인 상황처럼 해야 할 명확한 의학적 처치가 확실한 급성 상황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현재 별 증상이 없는 상황, 예방을 위한 건강관리 상황처럼 전문가도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과는 잘 맞지 않지만, 의료부권주의는 현대 의료시스템 구조의 근간이다.

부권적 의료는 우리의 건강 정보를 금고 속에 가두어 둔다. 환자들은 '모르는 게 약'이다. 하지만 내 건강 정보는 잘 관리되고 있지 않다. 진료비 청구에 최적화한 병원정보시스템은 진료비는 잘 관리해도, 막상 내 건강정보 관리에는 소홀하다. 첨단 인공지능으로 환자를 돌본다는 병원 광고는 무대 뒤편 수많은 의료진이 고통스럽게 수작업 중임을 뜻한다. 자기자신뿐 아니라 의료시스템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약'이다.

부권적 시스템에서는 모든 발전이 시스템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파괴적 혁신은 금지된다. 20년간 추진된 정보교류, 공유 사업은 성공하지 못했다. 병원은 환자정보를 교류할 인센티브가 거의 없다. 방어할 이유만 많다. 모든 병원 자료를 클라우드에 올리면 통합된다는 무지몽매한 주장 또한 의료 데이터의 특성과 데이터 통합에 대한 이해 부족을 증명할 뿐이다. 데이터 통합의 유인이 없는 부권적 시스템에서, 데이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데이터에 올라갈 인공지능으로 의료를 바꾼다는 주장 또한 공허하다. 원래 정형적인 의료영상이나 생체신호 데이터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제 환자의 건강정보를 환자 자신에게 돌려줄 때가 되었다.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소유한 시대다. 의료 데이터가 아직도 분절적, 비통합적 상태에 있는 것은 시스템 바깥 세상을 밝히는 햇볕을 쬐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권적 시스템에는 데이터 통합 유인이 없지만, 내 몸에 관한 정보, 내 가족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정보들을 관리할 환자 자신에게는 크나큰 유인이 있다. 바쁘고 전문성이 부족한 개인을 위해서 다양한 건강정보 관리서비스가 개발될 것이다. 엉망진창인 현재의 의료 데이터가 스마트폰을 통해 시스템 바깥의 햇볕을 쬐기 시작하면, 비전문가도 이해할 수 있는 용어들로 진화해갈 것이다. 병원이라는 건물에 한정됐던 의료행위 공간은 무한대로 확대되고 의사와 환자 사이의 소통이 원활해져 의료는 더욱 인간화할 것이다.

진료기록을 개개인의 스마트폰으로 전송하자. 병원이 모든 정보를 생성해 온 과거와 달리 이제 개인 스마트 장비가 24시간 건강정보를 생성한다. 스마트 환자들은 자신의 식이·운동·환경 정보를 시시각각 기록한다. 유전자 정보도 50만원이면 얻는다. 스마트폰은 곧 병원보다 더 풍성한 개인 건강정보를 보유할 것이다. 개인 단위 정보통합이 기관단위 통합보다 현명한 이유다. 개인별로 분산된 정보가 보안에도 더 안전하다. 연결된 환자들은 서로 돕는 참여의료(스마트폰으로 연결된 건강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이다. 바벨탑의 혼돈을 극복한 의료 데이터는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의료 인공지능의 르네상스를 꽃피울 것이다. 연결과 인공지능은 의료자원 고갈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의료 4차 산업혁명은 건강정보 자기결정권을 환자 자신에게 돌려주고, 잠들어 있는 의료 데이터에 생명을 불어넣을 때 시작된다.

본인에 관한 의료기록의 열람권은 의료법 21조에 보장돼 있다. 하지만 아직 해결 과제가 하나 남아 있다. 역방향 인센티브의 재균형 작업이다. 건강정보 활용의 혜택은 환자에게 돌아가지만, 정보전송 시스템 구축을 위한 투자는 의료기관 몫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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