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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책속의 이 한줄]도시의 본질은 시민을 품는 빈터-길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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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서 공간이 본질적인 것처럼, 도시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결코 몇 낱 기념비적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들로 둘러싸인 공공영역이다.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승효상·돌베개·2016년)

주말에 카메라를 들고 경복궁 옆 서촌마을을 찾았다. 골목에 자리 잡은 오래된 책방과 명소, 옛날 가옥들은 경복궁 돌담과 어울려 고즈넉한 정취를 자아냈다. 예전에는 반대편에 있는 삼청동도 종종 갔지만 지금은 안 간다. 그곳에 자리 잡고 있던 친숙한 풍경들은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상점, 유명 커피브랜드에서 만든 대형 카페로 대체된 지 오래다. 역사와 아름다움, 공공성은 사라지고 영악한 자본주의의 건축물이 생겨났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이전 안을 그리고 있는 승효상 씨는 건축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가다. 그는 문 대통령과 부산 경남고를 함께 다녔으며 당시 문과 수재는 문재인, 이과 수재는 승효상이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이 책에는 원래의 기능과 목적을 잃고 변질된 요즘 건축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건축은 원래 사람을 보호하고 안정된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삶의 기반 역할을 해야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일부 정치인에게 건축은 임기 내 치적을 자랑하는 도구이고, 건물주에게 건축은 임대료 상승으로 차익을 챙기는 부 증식의 수단이다. 그러한 건축물들의 공통점은 거대하고, 빈 공간을 남기지 않고, 주변의 자연, 환경, 역사와 단절됐다는 것이다. 서울시청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대표적인 예로 통한다. 이 건물이 서울의 어떤 역사와 의미를 담았는지, 동대문의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보는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다행히 최근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시도도 엿보인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앞 신촌 명물거리는 원래 버스, 택시, 승용차들이 몰리는 ‘교통지옥’이었지만 이를 대중교통 전용거리로 바꾸고 주말에는 도로를 막아 보행자들에게 내줬다. 오래된 책방이나 골목을 허물거나 대형 건물을 짓는 대신, 이를 보존하고 동네 명소로 발전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러한 곳들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서로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삶의 이야기를 쌓아나간다.

승 씨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사용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도시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빈터나 길가에 도시의 본질이 있다”고 썼다. 사람이 어떤 건물을 짓느냐에 따라 그 안,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삶도 변한다. 사람을 위한 건축, 사람을 위한 도시가 늘었으면 한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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