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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책의 향기]공공기념물에는 도시의 역사가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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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기억이다/주경철 민유기 외 11명 지음/544쪽·2만3000원·서해문집

“도시는 기억의 산물이자 그 자체”

피렌체의 ‘베키오 궁’ 파리의 동상,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 등 서양 13개 도시의 기념물을 통해 역사적 배경과 숨은 의미 들여다 봐

동아일보

건축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설계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베키오 궁. 1292년 귀족 세력을 누르고 정권을 장악한 포폴로(민중) 정부가 귀족 우베르티 가문의 저택 잔해를 파괴하지 않고 종탑 등의 기반을 활용해 지었다. 사진 출처 firenzeyesplea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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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중심부에 기념물 또는 기념공간을 조성하는 건 권력의 보편적 생리다. 실용주의 관점에서 비판이 따를 수밖에 없지만, 어떤 도시를 처음 찾는 이방인이 새겨 가는 기억은 대개 그곳의 기념공간과 이어지기 마련이다.

책의 부제는 ‘공공기념물로 본 서양 도시의 역사와 문화’. 그리스 아테네,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마드리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13개 도시의 대표적 기념물 또는 기념공간에 대해 기술했다. 저자 13명은 모두 역사학자다. 이야기의 초점은 자연히 건축적 분석보다는 공간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과 사연에 맞춰졌다.

“도시는 기억의 산물이자 기억 그 자체다. 크고 작은 공공기념물은 도시가 기억하는, 기억하고 싶어 하는, 기억해야 하는 과거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공공기념물이 구성한 역사문화경관은 특정 시기의 정치 상황과 맥락을 압축적으로 내포해 다양한 독해를 허용한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대한 장(章)은 조금 식상하게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로 연다. 주인공 아오이가 연인 쥰세이에게 10년 뒤 재회할 장소로 허다한 명소 중에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을 콕 집어 이야기한 까닭이 뭘까.

피렌체를 찾아가 그 성당 계단을 처음 올라 보면, 와인 몇 잔에 알딸딸해진 눈으로 울퉁불퉁한 저녁 돌길을 거닐다 보면 알 수 있다. ‘후원과 겸양’을 강조하며 화려한 과시적 건축을 지양했던 메디치 가문을 비롯한 이 도시의 지배자들이 특별한 포용의 온기를 거리 곳곳에 심어놓았음을.

“귀족 세력을 제압한 포폴로(민중) 공화정은 1292년 새 정부 청사 ‘베키오 궁’을 짓기 시작했다. 귀족 주택의 잔해 위에 건설한 이 건물을 통해 포폴로 정부는 권위와 승리뿐 아니라 귀족을 포용하는 관대함을 함께 드러내고자 했다. 베키오 궁의 종탑이 건물 중앙이 아닌 남쪽에 치우친 건 기존 탑을 파괴하지 않고 그 기반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런던에서는 시내 복판의 트래펄가 광장을 살폈다. 책은 이 광장이 아테네의 ‘소통형 광장’ 아고라와 로마의 ‘과시형 광장’ 포룸의 중간 형태라고 설명한다. 1840년대에 조성돼 넬슨 기념비 등 대영제국의 상징물이 차례로 세워졌지만 사회 통제 기능을 도모한 설계 초안과 달리 여성참정운동과 노동운동의 중심지로 쓰였다,

파리의 기념물로는 1870년부터 줄기차게 세워진 300여 개의 동상을 꼽았다. 공화국 정부가 시민들로 하여금 자율적으로 공공장소에 위인 동상을 건립하도록 허용해 ‘공적 숭배의 민주화’를 도모했다는 설명이다.

“위인에 대한 민주적 숭배가 가능해지면서 시민들은 더 이상 과거에 건립된, 위로부터 숭배를 강요한 권력자의 동상을 파괴하지 않게 됐고, 스스로 존경의 기억을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의 동상 건립에 열중하게 됐다.”

1880년부터 35년간 파리에 건립된 동상 150여 개 중 정치가나 군인의 동상은 22%다. 53%는 문인과 예술가, 25%는 과학기술자와 자선가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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