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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노미란의 동네책방]그남자 그여자의 '꼬리표 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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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왜 여성의 결정은 의심받을까 터리스 휴스턴 지음/김명신 옮김 문예출판사 1만5800원


[아시아경제 노미란 기자] 페미니즘 서적이 최근 출판계를 흔들고 있다. 교보문고 주간 판매 순위의 정치사회 카테고리에서 강박적 페미니즘을 지양해야 한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4위, 성차별에 대해 격의 없는 발언의 필요성을 논하는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가 7위,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하는 '엄마는 페미니스트'가 8위에 오르는 등 20위권 내 페미니즘 서적이 다수 이름을 올렸다. 사회에서 끊임없이 답습되는 남녀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고 양성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서적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남녀를 차별하는 현상에 주목하기 전 한 번쯤 남녀의 근본적인 차이를 들여다보고 고찰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여성이 남성보다 주차를 못한다? 양성평등이 뜨거운 이슈로 자리 잡고 있는 요즘 잘못하면 크게 비난받을 발언이다. 그러나 납득할 만한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면?

몇 년 전 한 방송사에서 제작한 다큐 프로그램에서 여성과 남성의 주차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적이 있다. 지정된 장소에 주차하는 실험에서 운전 경력이 동일한 남녀를 상대로 실험한 결과 여성들의 주차 시간은 남성들의 배 이상이 걸렸다. 주차는 이른바 3차원 공간에서 이뤄지는 차량 이동, '마음 속 회전' 과제인데 전형적으로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탁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아이큐 테스트에서 차용되는 도형 회전 문제가 바로 마음 속 회전 과제의 대표적인 예다.

이 실험 결과는 당연하게도 성별의 우열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별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실험이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미국 인지심리학자 터리스 휴스턴이 쓴 책 '왜 여성의 결정은 의심받을까'는 사회 내 여성 차별 현상에 주목하기보다는 여성과 남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되풀이해 입증하고 비판하고 강조하고, 마침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내용도 남성과 여성이 결정에 이르는 과정의 '차이'에 근거한다. 여성들의 사고 및 형태 특성은 남성들과 사뭇 다르기 때문에 남성처럼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상 비현실적인 조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남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결정하는 여성의 방식을 탐구한다.

예를 들어보자. 여성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감정적이 돼 일을 그르치는 반면 남성은 냉철하게 일을 잘 처리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고정관념은 단편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신경과학자들은 여성이 감정의 무게에 짓눌려 이성을 잃기보다 의사 결정에 고유한 힘을 부여한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급상승할 때 남성과 여성이 위험한 결정에 접근하는 방식이 상반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남성은 비용이 많이 들고 가능성은 낮지만 이득이 큰 선택을 추구하는 반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여성은 작지만 확실한 성공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압박감이 큰 의사 결정에 대해 성별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건 인간뿐만이 아니었다.

위스타 쥐와 가시고기도 수컷은 위험을 감수하고 암컷은 위험을 최소화했다. 요컨대 스트레스에 대한 성별 반응이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의미다. 그만큼 의사 결정 과정에 다른 성별이 고루 참여한다면 현명한 결정을 도출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조언한다.

애초 남녀 간에 뚜렷한 차이가 없음에도 결과적으로 차이가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도 추적한다. 책에 소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여성만큼 결단력 있게 행동하기 어려워한다. 여성이 상대적으로 결단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여성은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사회적 신념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보살피고 남성은 통솔한다는 신념이 있다. 이 신념에 따라 사회는 여성이 타인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공로를 나눌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의존한다고 비난한다. 결과적으로 여성은 협동성과 결단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강요받는다. 여성이 고정관념에 지배당해 불안해지기 시작하면 어려운 결정에 임할 때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생물학적 조건은 물론 사회적 조건이 다른 여성과 남성에게 서로 다른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남성에게는 유용하나 여성에게는 끔찍한 전략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령 "결정할 때는 가능한 한 많은 이의 동의를 받아라" "시간을 들여 다양한 선택지를 충분히 숙고하라" 등의 조언은 남성에게는 적절할지언정 여성에게는 자칫 '무능한 직원'의 이미지를 덧칠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조직 내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의사 결정이나 의사 표현에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와닿을 만한 내용이다. 다만 지나치게 여성에게 불리한 고정관념에 대해서만 고찰했다는 점에서 이미 균형을 상실했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남자가 운전을 더 잘한다'라는 고정관념에 대해 남성이 교통법규 위반율이 더 높으며 치명적인 사고를 잘 낸다는 통계자료를 들이미는 데 그친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반박하는 데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미란 기자 asiar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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