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원 주관 포럼서 기관투자가-기업, 경영성과 놓고 열띤 공방
“북한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고 있는데, 신한은 어떻게 대응할 겁니까?”
단상에 앉은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이만우 감사위원장을 향해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이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조 회장은 주주들의 말에 귀 기울인 뒤 대답을 이어 나갔다. “극단적인 상황이 생기더라도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여유 있게 외화 유동성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1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금융투자협회 등이 공동 주관한 ‘제1회 한국형 스튜어드십 포럼’이 열렸다. 포럼에는 국내외 기관투자가 40여 명과 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관계자들이 참석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과제 등을 논의했다.
이날 포럼의 핵심은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의 주주활동 시연(試演)이었다. 최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으로부터 지배구조 평가에서 유일하게 최우수등급을 받은 신한금융이 대상이 됐다. 앞으로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기관투자가들이 어떻게 주주활동을 벌이게 될지 알 수 있도록 금융투자 업계와 당국이 미리 판을 깔고 행사를 기획한 것이다.
지금 주주총회는 많은 경우 짜놓은 각본에 맞춘 ‘거수기’로 채워져 있지만,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이날 행사처럼 기관투자가들이 기업과 수시로 만나 경영전략과 성과를 공유하고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이미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영국과 네덜란드 등에서는 기관투자가들이 행동지침에 따라 기업과 대화하며 주주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 2위 공적연금인 네덜란드연기금 자산운용사 APG 박유경 아시아지배구조 담당이사는 “구체적인 숫자를 들어 신한금융의 중장기 경영 목표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네덜란드 연기금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반대 의사를 밝혔고, 지난해 말에는 삼성전자에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정경유착 문제에 대한 질의서를 보내는 등 매서운 주주활동으로 정평이 난 곳이다.
신한금융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일부 은행이 지점 통폐합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정부가 고용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며 “주주의 이익과 정부의 압력 중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인터넷은행의 위협 등 디지털 혁명에 대한 대응 수단이 무엇이냐는 질문도 이어졌다.
이날 포럼에서는 신한금융이 지배구조 평가에서 1위를 할 수 있었던 비결도 소개됐다. 류승헌 신한금융 IR팀 상무는 “2010년 ‘신한 사태’라는 초유의 위기를 겪은 후 투명한 경영승계 프로그램과 사외이사 운영 시스템을 정착시켰다”고 밝혔다. 이만우 위원장은 “이번 여름 회사에는 전혀 알리지 않고 외부회계 감사법인을 통해 미국에 있는 자회사들을 불시 점검하고 왔다”며 “사외이사의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활동을 통해 상시적으로 견제와 감시를 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금융 당국은 기관투자가의 책임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을 비롯해 자산운용사와 사모펀드 등 50여 개 기관이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600조 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올해 12월까지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한 뒤 참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조명현 원장은 “피델리티자산운용 등 해외 주요 기관투자가들도 국내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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