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9 (일)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85> 아이디어 지키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해가 안 돼. 이것에서 어떻게 저게 나왔지.”

1968년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 미국 국방성은 새로운 병력 수송용 장갑차를 개발하기로 한다. 병사들을 전장으로 빠르고 안전하게 수송할 목적이다. 탑승 정원 11명에 운전사 1명, 무장은 20㎜ 기관포로 설계했다.

“잘했네, 아주 훌륭해.”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바통을 이어 받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임기 때 문제가 시작된다. “다 좋은데 말이야, 이것을 수색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하면 어때?” “하지만 이건 병력 수송용인데요.” “둘 다 못할 게 뭔가.” “일단 너무 크고, 시야가 너무 좁습니다.” “그럼 포탑을 달면 좋겠구먼. 포탑을 단김에 화력도 빵빵한 걸로 올려 보지.”

전자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뒤를 이은 제럴드 포드 대통령 시절. “아니 이렇게 큰 차에 탄약 몇 발 더 넣을 자리를 못 찾는다는 거야? 앉을 자리를 하나 빼라고.” “병력 수송 차량입니다.” “몇 번 더 왔다 갔다 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그런데 가만 있어 보자. 이걸 수륙양용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탱크도 상대해야 하지 않겠나. 대전차 미사일도 달아 보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드디어 시제품이 나온다. 거창하게 소개된다. “정찰과 병력 수송, 대전차 기능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병력 6명을 수송할 수 있고, 최고 감시 장비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기관포와 대전차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병력을 수송하기에는 자리가 너무 좁고, 정찰차라 하기엔 너무 눈에 잘 띄고, 장갑은 제설차만도 못하고, 기관포 탄약 1500발과 10발의 토 대전차 미사일을 싣는 무언가가 됐다. 왜 종종 혁신은 방향을 잃을까. 브래들리 장갑차만 문제였을까. 우리 기업에는 이런 문제가 없을까.

존 캠벨 컨티넘이노베이션컨설팅 수석은 이것이 흔한 혁신 문제라고 말한다. 문제는 실상 단순하다. 어릴 적 학교에서 하던 전화기 놀이를 떠올려 보자. 선생님이 어느 아이만 들을 수 있게 작은 목소리로 얘기를 들려준다. 다음 아이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계속 반복된다. 마지막 아이가 손을 들고 들은 내용을 말한다. 교실에는 까르르 웃음이 쏟아진다. 전혀 다른 얘기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한 단계, 한 부서를 거치면서 원래 아이디어가 희석된다. 이것이 더해지고, 저것은 빠진다. 오류는 누적된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로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물은 넝마조각으로 전락한다. 이른바 '사일로 현상'이다.

전자신문

어떻게 해야 할까. 캠벨은 성공 혁신팀에서 해답을 찾아보자고 한다. 네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아이디어 의도가 분명한 팀 만들기다. 대개 5~9명으로 구성됐다. 아이디어 개발팀이 참여했다. 프로젝트 줄곧 함께 일하고, 같은 공간에 뒀다.

둘째 최초의 가치 제안을 유지하라. 아이디어 팀에게 고객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했다. 어떤 것은 협상 불가라야 아이디어는 유지된다. 브래들리의 경우 그것은 병력 수송용이란 것이었다. 이것이 훼손되기 시작할 때 오류가 덧칠되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되면 그다음은 걷잡을 수 없었다.

세 번째는 스토리텔링이다. 콘셉트의 바른 요소가 살아남으려면 왜 이런 제안을 하게 됐는지 고객 입장에서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브래들리는 스케치와 구두, 문서로는 있었지만 왜 보병 수송용 장갑차가 있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비주얼 스토리텔링도 도움이 된다. '블랙호크 다운'이라는 영화를 보자. 험비는 속도는 빠르지만 수송용이 아니다. 민병대로 가득 들어찬 소말리아의 한 도심을 가로지르기에 적합하지 않다. 보병 장갑차가 출동했을 때에야 사태가 겨우 마무리됐다.

넷째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라. 간혹 PPT나 엑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일단 개념이 모호해 지기 시작하면 수많은 제안이 떠다니기 시작한다. 프로토타입을 놓고 넣을 것과 뺄 것을 함께 논의하라. 많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혁신은 대개 독창성 강한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된다. 대개 3000개의 아이디어가 1개 제품으로 살아남는다. 그 과정에서 온갖 요구가 덧붙는다. 아이디어가 온전히 살아남은 것은 쉽지 않다.

'펜타곤 워즈'라는 영화는 이런 대사로 장면이 끝낸다. “뭐라고. 이걸? 이걸 정말 만들겠다는 거야?”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