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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ET단상]과학교육과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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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남창훈 DGIST 기초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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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학습자 성찰은 무엇보다 학습자 스스로 학습하는 이유를 발견하고 학습한 바가 어떻게 사회에 쓰이게 될지에 심사숙고하도록 이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성찰은 수동으로 받아들인 정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새롭게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또 성찰은 다양하게 받아들인 정보 순서를 중요도나 구조에 따라 재정리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이다.

성찰은 더 나아가 자신이 학습한 내용이 학습자가 속한 사회에 어떻게 적용돼 어떤 결과가 초래할 지를 가늠하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학습 방향을 꾸준히 재설정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능동형 성찰 과정은 어떤 정보나 견해를 수동으로 받아들이는 수준을 넘어 그 정보나 견해의 책임 있는 주체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핵심 과정이다.

과학 교육에 성찰이 필요한 첫 번째 이유는 과학 본질과 관련돼 있다. 과학의 중요한 본질 가운데 하나는 일체의 도그마나 권위에 지속해서 합리 타당한 의심을 던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서 과학을 배우는 것에는 학습자가 새롭게 받아들이는 정보나 견해를 합리 타당한 의심이라는 긴 필터에 통과시키는 과정과 치열한 학습을 통해 기존의 결론이라고 여겨지는 주장에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 포함된다.

두 번째 이유는 현대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관련돼 있다. 성찰이 결여된 과학 교육으로부터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보시킬 과학이 나올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과 공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즉각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핵물리학과 원자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 현대 유전학 발전과 휴먼게놈 특허권 분쟁, 배아 복제와 관련된 생명 윤리 논쟁,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기술, 인류의 불확실한 미래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례를 통해 우리는 사회 급변을 초래하는 과학 기술의 막대한 영향력을 절감할 수 있다.

성찰 없는 과학 기술이 만들어 낸 사회 급변은 자칫 통제가 불가능한 미래를 야기할 수 있다. 이에 따라서 과학을 배운다는 의미에는 과학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사회 변화를 이끌지를 이해하며, 더 나아가 어떠한 변화를 지향해야 할지를 심사숙고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과학기술자를 배출하는 대학 과학 교육에서 특히 인문 소양 교육을 비롯한 성찰 비중이 커져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만일 오늘날 과학 교육을 받은 과학 인재들이 첨단 과학 기술 지식은 섭렵하고 있지만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 성찰을 결여, 유사 과학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면 우리 과학 미래는 어떤 모습이 될까. 만일 오늘날 과학 교육을 받고 있는 과학 인재들이 공부와 실험에만 전념하느라 상식 수준의 역사관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에겐 어떤 미래가 있을까.

과학 기술은 한편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이지만 다른 한편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의 본성과 변화를 합리 타당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안목이기도 하다. 그러함에도 우리 사회에는 과학 기술을 단지 경제 발전 도구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이 시각은 성찰이 결여된 유사 과학이나 과학자의 역사 인식에 바탕을 둔 사회 사명 등에 관심이 별로 없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라는 사회 급변을 이야기하는 지금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던져야 할 값진 질문이다. 과학의 본질을 꿰뚫는 시야와 21세기 격랑에 쾌속 질주하는 과학이라는 함선 위에서 과학이 나아가야 할 바를 가리키는 나침반은 어쩌면 미래 과학을 이끌 과학 인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창훈 DGIST 기초학부 교수(교수학습센터장) chang@dg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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