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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당신은 내 인생 최고의 은인" 결혼 80주년 맞은 노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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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해로의 비결은…"남편은 언제나 내 편"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대전에서 80년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가 있어 화제다.

정흥모(96)씨와 박만서(97)씨는 16일 대전시 서구 갈마동 한 음식점에서 결혼 80주년을 맞아 가족과 친지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크웨딩(Oak Wedding)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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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모(96)·박만서(97)씨 결혼 80주년 기념식
[박주영 기자 촬영]



오크웨딩은 서양에서 결혼 80돌을 일컫는 말로, 국내에서도 금혼식(50주년), 회혼식(60주년)은 있었지만, 80주년은 그에 해당하는 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이례적이다.

충남 부여에서 농사를 짓던 정씨는 당시 16살이던 1937년 인근 논산 이웃마을에서 살던 한 살 위의 박씨를 중매로 만나 그해 11월 결혼했다.

처가가 경제적으로 궁핍하다는 중매쟁이의 말에 처음엔 꺼렸지만, 막상 만나고 보니 박씨가 가여웠다고 한다.

"다시는 저 눈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것이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선택한 이유가 됐다.

슬하에 삼남오녀를 두고 모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공부를 마치도록 가르쳤지만, 그 과정에서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씨의 알뜰한 성격과 아내의 부지런한 성격 덕분에 분가할 때 논 세 마지기와 닭 한 마리, 이불 두 채였던 살림이 3년 만에 논 아홉 마지기로 늘었다.

부부는 하루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었다.

개간한 밭에 구기자를 심어 찻잎을 팔았고, 담배를 심어 말려 전매조합에 냈으며,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길러 제사공장에 팔았다.

장날에는 옥수수와 열무, 깐 도라지를 가져가 팔아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에 보탰다.

아내 박씨는 "닭이 나은 달걀을 팔아 돼지를 샀고, 돼지 새끼를 키워 송아지를 샀다. 송아지는 길을 들여 일소로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며 "남편이 늘 내 편이었기에 갖은 고생도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편 정씨는 요즘 말로 하자면, '츤데레' 스타일이었다.

겉으로는 무뚝뚝하면서도 속정이 깊어 산이나 들에서 야생 먹거리들을 캐와 가족들을 먹이는 데서 보람을 찾았다.

1945년 8·15 광복에 이어 1950년 6·25 전쟁까지 시대적 시련에 함께 고초를 겪으며 지금은 백발이 하얗게 세고 손가락이 다 휘어져 마디마디가 비틀어졌지만,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아직도 80년 전 그대로다.

박씨는 "남편은 피부가 좋고 잘 생겨서 내가 엄마 같고 남편이 아들 같다"며 '남편 바보'의 모습을 보였다.

진짜 '백년해로'를 앞둔 이들 부부가 말하는 행복한 결혼의 비결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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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80주년 맞은 정흥모(96·왼쪽)·박만서(97)씨



박씨는 모든 공을 남편에게 돌렸다.

그는 "분가할 때 시아버님께서 논을 너무 적게 떼어주셔서 속상한 마음에 따져 묻기도 했지만, 남편은 이런 나를 참아주었다"며 "적극적인 성격 덕에 사회활동도 많이 해서 옛날에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을 텐데, 남편은 늘 이런 나를 믿어주고 지켜봐 줬다"고 말했다.

이어 "화목한 가정으로 오늘날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동반자, 내 인생 최고의 은인인 '정흥모'님 덕분"이라며 "남편으로 인해 내 인생의 꽃이 피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은 자식들에게 귀감이 됐다.

충남학생교육문화원에서 문헌정보부장으로 일하는 막내딸 정명옥(53)씨는 박씨가 살아온 인생을 담아 지난해 11월 어머니의 자서전을 펴내기도 했다.

아산 온양여고 학생들이 박씨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구술사로 정리한 자서전에는 박씨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결혼까지 일생에 대한 기술이 담겨 있다.

박씨는 자서전에서 "요즘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이 많다"며 "인간으로 진정한 삶을 살려면 결혼도 하고 자녀를 낳아 부모로서 책임을 지고 기르면서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며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막내딸 정씨는 "우리 부모님은 저의 롤모델"이라며 "남편이 교장 진급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나는 그저 우리 아버지처럼 말없이 내 옆에서 나를 지켜봐 주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뿐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1997년 결혼 60주년 회혼식에 이어 이번에 결혼 80주년 행사를 주관한 장남 정진남(77)씨는 "어머니가 회혼례 비디오 영상을 보고 즐거워하시던 모습을 보고 80주년 기념식을 마련하게 됐다"며 "요즘 몸이 부쩍 불편해지셨는데,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결혼 90주년도 맞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j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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