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산사태 현장
2014년 여름 지리산 천왕봉 인근 제석봉에서 발생한 대형 산사태 현장. 채석장만한 훼손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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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여름 서울 시내 강남 한복판에서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는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국가적 재해재난이다. 여름철 한반도에 산사태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여전히 훼손 상태로 방치된 2014년 지리산 산사태 현장, 일상의 위험을 안고 사는 수도권 인근 산자락 현장 등은 우리에게 무엇을 경고하고 있을까.
지난 7월14~16일. 충청북도 청주시 일대에 산사태가 발생해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산사태는 시간당 9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데다 취약한 지층구조 등이 주된 원인으로 꼽혔다. 2014년 7월과 8월 사이에 발생한 지리산 제석봉 일대 산사태는 규모나 양상 면에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었다. 발생 지점은 해발 1712m 지대, 훼손지의 폭만 해도 125m에 이른다.
2011년 여름 발생한 우면산 참사 당시 현장 모습. 산 정상 부근에서 쏟아져 내린 토석류로 인해 자동차가 일그러진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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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해마다 여름철이면 크고 작은 산사태가 한반도 곳곳을 덮쳐왔다. 대표적인 사례 몇가지만 우선 추려보자. 1996년 7월 군부대 막사 뒷산이 무너지면서 20명의 군인 목숨을 앗아간 철원의 군부대 산사태, 2002년 태풍 루사에 따른 산사태, 2006년 인제·평창 수해에 이은 산사태. 그리고 2011년 7월27일을 전후로 서울 우면산 산사태와 춘천 산사태가 발생해 둘을 합쳐 30명 가까이 사망하는 참사를 겪었다. 특히 우면산 산사태는 서울 시내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라 그 충격이 더했다. 자연 지역뿐 아니라 생활권 산사태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공포를 일깨워줬다.
지난 20년간 여름철 산사태 발생 많아
2011년 우면산 참사 등 재난재해 빈번
2014년 지리산 제석봉 일대 산사태
아직까지 최소 25곳 훼손된 채 방치
한반도 기상 환경 근본적으로 변화
군부대 등 주요시설 위험에 노출
정부 차원 종합적 대응체계 없고
부처간 엇박자도 해결해야 할 과제
여름철 산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무엇보다 규모 면에서 대형화하고 양상 면에서 일상화하는 등 한반도의 산사태 자체가 끊임없이 ‘진화’하는 모양새다. 특히 백두대간과 국립공원을 비롯한 전국의 고산지대에서 산사태가 예전보다 훨씬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리산을 포함해 설악산·점봉산·방태산·오대산·대암산·가리왕산·왕피천 등 산림자원의 보전가치가 매우 높은 보호구역 곳곳이 산사태 위험지대로 탈바꿈했다.
천왕봉 일대 곳곳이 산사태 전시장
3년 전 끔찍한 산사태가 발생한 지리산 제석봉 일대. 최근 둘러본 천왕봉 정상 조금 못 미친 이 일대는 그야말로 곳곳이 여전히 산사태 전시장으로 남아 있다. 규모가 큰 곳은 채석장만한 곳도 있다. 칠선계곡 상단 골짜기에는 대형 스키장만한 훼손지도 6곳이나 된다. 천왕봉을 중심으로 주변으로 이어진 골짜기 곳곳에 최소 25곳 이상의 훼손지가 웅크리고 있는 중이다.
경북 울진군 근남면 일대 왕피천 생태경관보전지역의 산사태 훼손 현장 모습. 아직까지도 복구가 되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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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일대는 제석봉~천왕봉~중봉 등의 주 능선이 연결되어 있는 곳이었다. 지리산 천왕봉의 북사면에 해당한다. 가문비나무와 구상나무 등을 비롯해 사스래나무, 신갈나무 등 원시성 고산수림대를 자랑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공포스럽게 쏟아지는 폭우 앞에서 아파트 한 동 크기만한 산지 토양 전체가 빗물에 의해 계곡으로 사라졌다. 수목과 풀꽃은 물론이고 토양도 거의 다 쓸려 내려갔을 정도다. 호박 크기의 돌멩이부터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크기만한 암석들이 계곡으로 쏟아져 내려갔다. 3년 전 산사태는 주능선 등산로에서 아래 계곡 쪽으로 200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발생했다. 그래서 지리산을 찾는 일반 탐방객들 눈에 쉽게 띄지는 않았다.
우면산 산사태는 어땠을까. 당시 산사태의 최초 발생지는 산 정상에 있는 공군부대였다. 사건 발생 당일 현장의 상황을 보면, 공군부대 울타리 안쪽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빗물과 엉킨 토사가 부대 울타리를 치고 나가면서 우면산 전체를 빠른 속도로 쓸고 내려갔다. 문제는 비슷한 환경을 지닌 곳이 우리 주변에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 공통적으로 산 정상에 군부대나 통신시설이 자리잡고 있고 그 아래 산자락 끄트머리에 주택가나 마을이 몰려 있다. 산 정상부에 자리잡은 주요 시설에서 산사태 발생 요인을 미리 제거하지 못한다면 끔찍한 우면산 사태와 같은 불행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면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성남 검단산이 대표적이라 할 만하다. 실태를 살피고자 최근 찾아간 검단산 정상부엔 공군부대와 통신시설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아래 비탈 끝엔 다세대주택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우면산 일대와 엇비슷한 입지다. 정상의 주요 시설을 중심으로 남쪽과 서쪽의 사면 자락에 도심이 펼쳐져 있다. 산비탈 경사 지역 아래는 중원구 은행2동 중심이다. 은행2동 일대 주택가에서 올려다보면 검단산은 마치 성채처럼 우뚝 솟아 있다. 성남청소년문화의집 옥상이나 제9시영주차장 옥상에서 보면 검단산 자락을 파고들듯이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는 모양새다.
산자락 맨 아래와 주택들 사이를 성남순환로 4차선 도로가 지나간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렇다고는 해도 안심하기엔 이르다. 우면산 산사태의 경우에도 산자락과 아파트 단지를 8차선의 남부순환도로가 가로지르고 있었으나 참사를 피할 순 없었다. 어떤 면에선 검단산 입지가 우면산보다 더 걱정스러운 측면도 있다. 산자락에 주택이 밀집한 곳은 한번 산사태가 발생하면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높이가 293m인 우면산에서 발생한 산사태도 1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검단산 높이는 530m로 우면산보다 더 높다.
하루에 250~300㎜ 물폭탄 퍼붓기도
우면산과 검단산의 경우처럼 산 위에 군부대나 주요 시설이 있는 곳은 전국적으로 100곳이 넘는다. 안양 수리산, 용인 석성산, 대구 팔공산 등을 비롯해 대구, 광주, 진천, 군산, 태안, 안성, 나주, 양평, 남원 등 대도시부터 중소 도시까지 이런 위험 요인을 안고 있는 산들이 전국에 널려 있다.
수도권에 위치한 산 정상으로 오르는 군부대 진입로의 모습. 이처럼 산사태 위험에 노출된 현장이 전국에 100여곳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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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이런 시설들 대부분이 1980년대 이전에 조성됐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시설은 당시 강우량과 강우빈도에 입각해 설계됐다. 우면산 산사태 때처럼 1시간에 100㎜ 이상 폭우가 쏟아지거나 하루 200㎜ 이상 내리는 시나리오는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사이 한반도의 기상환경은 크게 변했다. 여름철이면 하루에 250~300㎜ 물폭탄이 찾아오는 게 흔한 일이 됐다. 이런 시설들의 불량한 배수체계는 아직 개선되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군부대가 위치한 산들이 산지재해 위험성이 더 높다. 한국산림기술공학회 이사인 정규원 박사는 “산지는 평지와 다른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산지를 이용할 때는 반드시 산사태를 비롯한 재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며 “특히 산 정상의 시설들은 부지뿐만 아니라 진입도로까지 체계적인 배수 시스템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의 움직임은 더딘 편이다. 정부는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이후 산사태를 국가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산림청은 치산과란 조직을 산사태방지과로 개편했다. 사방댐 건설을 비롯한 산사태 방지시설 조성에 머무르던 대응 수준에서 현장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국토교통부도 도심지를 중심으로 지반 붕괴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산사태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체계는 여전히 미비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산사태를 정책부터 현장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총괄 기관이 없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렇다 보니 산사태 대응의 기초 중의 기초라 할 발생 지역 기록과 분석은 먼 과제로만 남아 있다. 산사태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마만큼 발생했는지, 산사태의 발생 시기는 언제 집중되는지, 생활권 산사태와 자연형 산사태는 어떻게 다른지 등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조차 갖춰지지 않았다. 산사태의 사각지대가 버젓이 남아 있는 셈이다.
산림청과 환경부 보고서 제각각
정부 부처간 엇박자도 문제다. 한 예로, 백두대간과 국립공원의 산사태는 각각 산림청과 환경부가 담당하고 있다. 이런 칸막이 업무처리 결과, 백두대간과 국립공원의 산사태 현황 보고가 제각각인 웃지 못할 상황마저 벌어지는 형국이다.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은 2015년 10월 ‘시계열 공간영상을 이용한 산악형 국립공원 지역의 산사태 현황분석’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엇비슷한 시기인 그해 12월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도 ‘국립공원 산사태 발생지 현황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국립공원을 대상으로 동일한 주제인 산사태 현황을 조사한 것인데, 결과는 두 기관의 보고서 사이에 큰 차이가 났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1987년부터 2011년까지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조사한 산사태 총 피해 면적은 약 73㏊이며 산사태 발생 개소 수는 142곳으로 나와 있다. 반면 산림청 조사에선 총 피해 면적이 973㏊로 환경부 보고서와 약 13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산사태 발생 개소 수 역시 1086곳으로 약 7배 이상 차이가 났다.
얼마 전 살충제 파동을 겪으면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문재인 정부는 다른 건 몰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만큼은 야무지게 챙기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국가적 재해·재난은 단지 선언만으로 대응하는 게 아니다. 현장을 꼼꼼하게 챙기고 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정책을 확실히 수립해야 한다. 우리 정부의 산사태 대응에선 예나 지금이나 위험을 바라보는 과학적 ‘눈과 뇌’가 없다. 한반도의 기상환경은 변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불안감을 안고 지내야 하는 걸까.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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