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사진=블룸버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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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경제가 꾸준히 회복되고 있음에도 왜 ‘물가상승률’은 제자리일까.
‘닥터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14일(현지시간)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게재한 ‘실종된 인플레이션 미스터리’란 제목의 칼럼에서 경제 성장률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물가상승률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는 이유를 분석했다.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지속해서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성장률 높아졌는데 오르지 않는 물가상승률
2016년 여름 이후 세계 경제는 완만하게 성장해 왔지만, 선진국의 물가상승률은 제자리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일정 수준 물가가 오를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한 정책에 초점을 맞춰온 중앙은행들은 ‘왜’라는 의문에 직면했다.
루비니 교수에 따르면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 경제권의 경제를 성장시킨 힘은 총수요 증가다. 지속적인 통화부양책과 재정부양책으로 돈이 많이 풀렸다. 또 금융시장과 경제 위험 요소가 줄며 기업과 소비자 심리도 회복됐다. 지정학적 위험은 아직 경제나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수요가 강력해졌다는 건 남아도는 재화와 노동력, 이른바 유휴자원(slack)이 줄었단 걸 의미한다. 경제성장으로 유휴자원이 줄면 물가가 오르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올해 식품과 에너지 등 가격 변동성이 큰 항목을 제외한 근원 물가상승률이 떨어졌고 유럽과 일본에서도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중앙은행들에 딜레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유럽중앙은행(ECB)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에서 빠져나가려는 시도를 시작했거나 하고 있다. 그러나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경제성장률만 끌어올렸지, 각국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 목표로 삼는 연 2%의 물가상승률은 달성시키지 못하고 있다.
◇높은 성장률과 저물가 조합…공급 충격 때문?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동안 물가상승률이 제자리에 머물거나 오히려 낮아지는 ‘미스터리한’ 조합을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가능한 접근이 있다. 바로 강력한 총수요와 함께 선진국들이 ‘긍정적인 공급 충격’(재화나 서비스의 급격한 공급 증가에 따른 가격변화)을 경험하고 있다는 관점이다. 물가는 수요가 늘어도 공급이 더 늘어나면 오르지 못한다.
긍정적 공급 충격은 여러 경로로 올 수 있다. 세계화로 중국 및 신흥국에서 저렴한 재화와 서비스가 유입됐다. 또 노동조합이 취약해지고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약화하면서 ‘필립스곡선’(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의 반비례 관계)이 무뎌졌다. 원유와 다른 원자재 가격도 하락해 왔다. 여기에 인터넷 혁명에 따른 기술혁신이 재화와 서비스 생산 비용을 줄였다.
일반적인 경제학 이론은 통화정책이 공급 충격의 지속성 여부에 따라 다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충격이 일시적이라면 중앙은행은 대응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 충격이 결국 자연스럽게 사라지면서 물가상승률도 이에 맞춰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의 강도와 상관없이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충격이 영구적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 경우 중앙은행들은 물가상승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통화조건을 완화해야 한다. 금리를 낮춰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수 있다.
이런 관점이 중앙은행들에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 FRB는 미국의 근원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보다 낮은 수준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공급 측면의 충격이 ‘일시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야 결정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ECB 역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물가상승률이 아직 ECB 목표에 미달했지만, 내년에 채권매입 규모를 줄여나가기 시작할 전망이다. 이 계획이 현실화한다면, 역시 물가상승률이 곧 높아질 것이라는 가정 아래 이뤄지게 될 것이다.
◇공급 충격 영원하다면, 물가상승률 목표치 2%보다 낮아져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공급 충격이 영구적이란 가정이 통화정책 정상화를 더 빨리 단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이 이미 ‘새로운 기준(뉴노멀)’에 도달했다는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이 같은 관점이 국제결제은행(BIS)의 진단이다. BIS는 물가상승률 목표를 2%에서 0%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BIS는 만약 공급 충격이 영구적으로 달라졌는데 2%의 물가상승률을 달성하려 한다면, 과도한 통화부양책이 야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무리 통화부양책을 지속해 돈을 풀어도 공급 충격이 동시에 진행되면 2% 목표는 달성할 수 없다.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위해 유동성만 계속 풀면 위험자산 가격의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고, 궁극적으로 위험한 거품을 만들 수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오히려 통화정책 정상화를 앞당겨 또 다른 금융위기를 피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BIS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면 통화정책이 아닌 거시건전성 신용정책(자본시장에 대한 과세 등)으로 자산가격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딜레마 빠진 선진국 중앙은행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이런 자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일시적’ 공급 충격으로 물가상승이 억제돼 있기 때문에 재화 및 노동력의 공급우위가 해소되면 이 역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으로 진단하면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낮은 물가상승률이 영구적인 공급 측면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제기됨에도 중앙은행들은 통화완화 추가 확대를 꺼린다. 만약 공급 충격이 영구적이라면 이들 중앙은행은 양적완화나 마이너스 금리 같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훨씬 더 오랜 기간 지속해야 함에도 말이다. 이런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일본은행(BOJ)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불편해하는 방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들은 2%의 물가상승률 목표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목표의 달성 시점만 늦추고 있다. 더 오랜 기간이 지나면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이런 중앙은행들의 ‘인내’는 장기적인 물가상승률 기대치를 떨어트릴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앞으로 물가가 더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하면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미뤄 경제활동이 둔화할 수 있다. 그렇다고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더 오랜 기간 고수하는 건 과도한 신용 증가에 따른 자산 거품을 만들 수 있다. 루비니 교수는 “낮은 물가상승률의 원인에 대한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한 중앙은행들은 이처럼 어긋나는 위험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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