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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욜로족도 골로족도 ‘내일’에 사로잡힌 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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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미래중독자’…멸종 직전의 인류가 떠올린 가장 위험하고 위대한 발명]

머니투데이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은 악당들에게 “내일을 사는 놈들은 오늘만 사는 놈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만약 인간이 오늘만 생각하고 살았다면, 지금과 같은 ‘번영의 삶’이 가능했을까.

조금 더 시각을 비틀면, 어쩌면 ‘내일’이라는 희망과 낙관의 메시지 때문에 ‘오늘’을 계속 불행하게 보내는 건 아닐까.

내일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오늘의 청춘들, 오늘의 불행을 감내할 힘을 내일에서 얻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 모두 어쨌든 ‘내일’을 떠올린다. 내일은 살아갈 힘을 주는 가능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오늘만 사는 ‘욜로족’이냐, 내일을 대비하는 ‘골로족’이냐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쉽지 않지만, 인류 역사의 초창기 움직임을 보면 오늘을 살든, 내일을 살든 ‘미래’ 때문에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저자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멸종 위기의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지구를 장악할 수 있었을까. 그건 인간의 최고 업적인 ‘내일’이라는 발명품 덕분이다. 하지만 이 발명품 때문에 삶이 풍요해졌는데도 인간은 더 불행하고 불안해한다. 내일의 역설인 셈이다.

내일은 위험한 도전을 가능케 해 삼성 핸드폰을 낳기도 하지만, 핵폭탄이라는 불행의 씨앗을 잉태하기도 한다.

저자는 “멸종위기에 처한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 역전극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불이나 언어 등의 발명보다 더 극적인 발명품인 ‘내일’을 꼽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은 ‘왜 5만 8000년 전 인류가 갑자기 아프리카로 떠났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수많은 학자가 ‘아프리카 이민’을 규명해 왔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명확히 밝혀진 사실이 없다. 괜찮은 환경을 포기하면서까지 이주를 고려한 사피엔스의 결단엔 기후 조건 등 생태학적 이유가 아닌 심리학적 이유가 컸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어느 날 문득 ‘내일’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오늘만 사는 동물’의 낙원에서 추방됐고(창세기) 돌연 아프리카를 떠나게 됐으며(출애굽) 동료의 죽음을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닥칠 죽음이란 미래에 대해 상상하게(메멘토 모리) 됐다는 것이다.

상상을 발명한 이후 인류는 불확실한 미래를 염두에 두느라 만성적 불안과 공포에 시달려야 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준비와 계획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상상된 미래를 대비하는 과정에서 축적과 잉여가 탄생한 뒤 호모 사피엔스는 ‘과잉’의 지옥에 빠진 것이다. 저자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 짓는 인간다움이란 오직 내일이라는 상상과 그 상상에서 비롯된 과잉이라는 현상뿐이라고 봤다.

하지만 단순히 ‘내일’이라는 재료가 인류 존속의 중요한 추동이 될 수 있었을까. 뇌의 비약적 성장에 따라 불을 통제하고 언어로 소통하는 ‘진화의 단계’들이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

저자는 장점으로 꼽혀온 인류의 뇌의 성장이 멸종 위기로 빠뜨린 결정적 단점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호모 에렉투스는 뇌 용적이 1.1ℓ까지 성장했지만 0.4ℓ의 뇌 용적을 지닌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석기 기술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현생 인류가 비슷한 조건을 가진 27종의 호미니드(Hominidae, 사람과)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이나 고고학적 범위가 아닌 철학적, 심리학적 영역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대입할 때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다윈 역시 자연을 혁명적으로 진화한 적자만이 생존하는 세계로 보지 않고 우연과 불합리에 기댄, 균형을 이룬 세계로 인식한다고 해석했다. 그 우연한 ‘멍 때리기’가 ‘내일’이라는 개념을 불러왔고, 결과적으로 빅뱅에 버금가는 격변을 만들어놓은 셈이다.

인간이 오늘을 사는 것은 미래의 기대에 취했거나 미래의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을 이렇게 정의한다. ‘미래에 사로잡힌 별종’이라고.

저자는 “내일이 없다는 생각으로 오늘에 만족하는 존재는 짐승이거나 해탈한 부처”라며 “내일에 사로잡혀 더 많이 불안해하고 초조한 채 과잉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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