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테이지-89]
17회 SPAF 개막작 '줄리어스 시저'
루마니아의 거장 실바우 푸카레트 연출
"만약 시저의 친구가 왜 브루투스가 시저에 역모를 일으켰느냐고 묻는다면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브루투스가 시저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한 것이라고. 여러분은 시저가 죽고 만인이 자유롭게 사는 것보다 시저가 살고 만인이 노예로 죽는 것을 원하십니까? 시저가 날 사랑했기에 그를 위해 울었고, 그가 영광스러웠기에 그를 위해 기뻐했고, 그가 용감했기에 그를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시저가 야심가였기에 전 그를 죽였습니다."(극 중 브루투스의 대사)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바탕으로 쓴 셰익스피어의 극은 시저가 정적인 폼페이우스를 제거하여 정치가로서 권력의 정상에 올랐을 때 암살당하는 내용을 다룬다. 하지만 이 극은 제목과 달리 시저가 주인공이 아니다. 시저의 양아들이면서도 정치적 이상을 위해 그의 암살에 가담하는 로마의 이상주의자 브루투스가 극을 이끌어 간다. 셰익스피어는 시저가 암살되는 사건을 전후로 브루투스가 갈등하고 결국 파멸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관객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브루투스의 심리를 따라가며 결말을 만나게 된다(그럼에도 왜 제목이 '줄리어스 시저'인가에 대해서는 당대 사람들에게 더 매력 있고 잘 알려진 사람을 작품의 전면에 드러내 흥행을 꾀했다는 설과, 등장인물 가운데 지체 높은 사람을 제목으로 삼는 일이 그 시대에는 흔히 있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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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어스 시저'가 15일 올해 17회를 맞는 '2017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개막작으로 무대에 오른다. 유럽 최고의 연출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루마니아의 거장 실바우 푸카레트의 연출 아래 클루지안 시어터 배우들이 무대에 선다. 이 작품을 "가혹한 정치극"이라고 정의한 푸카레트는 권력과 그 주변에 피어오르는 음모와 모략이라는 셰익스피어의 화두를 현대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 이식했다.
이병훈 SPAF 연극 프로그램 감독은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통찰력은 현재에도 유효하다"며 "작품은 동유럽과 아랍의 정치적인 상황을 빗대는데 놀랍게도 한국의 정치 상황 역시 관통한다"고 설명했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비극이나 사극과 달리 이 작품은 희극적 요소나 사랑 이야기 등 곁 이야기가 전혀 없이 '시저의 암살'이라는 단일한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에는 시저의 암살을 두고 갈등하고 두려워하는 브루투스와 공화당 일당의 모습이 그려진다. 혁명의 기쁨은 잠깐 불과하다. 불길이 사그라들고 잿더미가 된 폐허 위에 새로운 세상을 세우는 일은 보다 지난한 일이다. 브루투스와 공화당 일당은 암살에 성공하지만 시저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지 못하고 새로운 혼란에 빠진다. 결국 이는 내란과 제국의 쇠퇴를 초래하고 만다
많은 비평가들은 로마제국으로 넘어가기 직전 로마 공화정 말기의 어수선한 정국을 그린 이 극이 셰익스피어가 영국의 강력한 군주제의 필요성을 피력하는 정치극이라고 해석한다. 오늘날 대한민국 관객들에게 이 작품은 '우리도 지금 이와 같은 길에 서 있지 않은가?'라고 자문하게 만든다. 촛불혁명 이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로마처럼 독재자를 그리워하며 쇠퇴와 내란의 길로 가는 것은 아닌지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모든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그렇듯이 작품의 매력은 입체적인 인물에서 나온다. 셰익스피어는 시저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을 양가적 성격의 소유자로 그린다. 예를 들어 시저는 용맹스러운 전쟁 영웅이지만 동시에 간질을 앓고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신체적 결함과 미신을 믿고 의존하는 정신적 병약함을 지닌 자다. 브루투스는 고결한 인품과 곧은 강직성을 지닌 도덕적 영웅이나 이상주의로 가득 차서 현실 감각이 부족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모든 비극의 주인공이 그렇듯이 브루투스는 단점 때문이 아니라 타고난 장점 때문에 더 큰 불행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바로 정의로움 말이다. 브루투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저의 수족인 안토니우스가 추모연설을 하도록 허락한다. 하지만 안토니우스는 그의 기대를 배반하고 추도사에서 로마 시민들을 호도한다. 난자되어 피로 얼룩진 그의 시신을 보여주며 시민들의 분노를 부추기고 브루투스 일당은 광분한 시민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푸카레트는 무대 위 독특한 장치들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권력을 '마이크'라는 현대적 메타포로 표현한다. 또 전쟁 장면에서는 실제 '거대한 사냥개'를 풀어 무대 위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 사냥개 배우를 위해 SPAF 측은 따로 호텔을 잡아 극진히 모셨을뿐더러 털 날림 등과 관련해 극장과 오랜 사전 협의를 거쳤다고 한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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