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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강찬수의 에코 파일]빗나간 강수량 예보, 기상청 탓일까 온난화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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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부산, 거제 일부 지점 300㎜ 넘는 폭우

전날 기상청 "많은 곳 150㎜ 이상"으로 예보

시민들 "예보 두 배 넘는 폭우"..기상청 비난

'가을 폭우' 경고 했다지만 제대로 전달 안 돼

집중호우 예측하려면 수치예보모델 개선 필요

사례 없는 기상이변까지 예측은 한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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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역에 폭우가 내린 11일 부산 연제구의 한 아파트 단지 앞 도로가 물에 잠겨 차량이 침수 피해를 겪고 있다. [부산소방안전본부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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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강수량 예보, 기상청 탓일까 온난화 탓일까

지난 11일 부산과 경남 거제시에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면서 주택과 차량이 침수 신고가 수백 건 잇따랐다.

부산지역 유치원과 초·중·고교에는 휴업 조치도 내려졌다.

비 피해가 속출하면서 기상청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다.

비가 300㎜ 넘게 쏟아졌는데, 기상청이 강수량을 제대로 예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튿날인 12일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온 기상학자 H 교수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기상청이 예보를 그런대로 잘했는데, 왜 오보를 냈다고 비판받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폭우에 시민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예보를 잘했다는 H 교수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기상청 쪽도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상청을 위해 변명을 한다면 이런 내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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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부산 중구 동광동의 주택 세 채가 잇따라 무너져 출동한 119구조대원들이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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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넘은 관측 지점은 두 곳

H 교수는 우선 3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것은 일부 관측지점이었다는 점을 들었다.

부산 영도구 동삼동 자동기상관측지점(AWS)에서는 11일 하루 358㎜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또 거제시 신현읍 장평리 자동관측지점에서도 308㎜의 비가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기상청은 지난 10일 예보를 통해 "11일까지 전남과 경남에 50~100㎜ (많은 곳 150㎜ 이상)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예보했다.

시민들은 "실제 내린 비의 양은 기상청이 예보한 것의 두 배"라며 기상청이 심각한 '오보'를 냈다고 비판한 이유다.

그런데 전국 500개가 넘는 AWS 관측 자료를 살펴보면, 그날 300㎜가 넘는 강수량을 기록한 지점은 앞에서 언급한 부산 동삼동과 거제 장평리 두 곳뿐이었다.

또 그날 강수량이 많았던 상위 10개 지점(부산 8곳과 거제 장평리, 경남 통영시 정량동)의 평균 강수량은 276.7㎜였지만, 11~20위 지점의 강수량은 평균 166.9㎜, 21~30위 지점의 평균 강수량은 113.9㎜로 뚝 떨어진다.

150㎜ 이상 비가 내린 지점은 부산·통영·거제 지역의 14개 지점이었다.

전남과 경남(부산·울산 포함)의 전체적인 강수량을 본다면 "50~100㎜ (많은 곳 150㎜ 이상)"가 완전히 빗나갔다고 하긴 어렵다.

물론 부산지역 14개 지점만을 골라 평균 강수량을 계산하면 220㎜로 기상청 예보 150㎜보다는 훨씬 많았다.

따라서 이것만으로는 기상청이 100% 책임을 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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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부산지역 폭우 당시를 보여주는 기상청 기상 레이더 영상. 붉게 표시된 곳이 폭우가 쏟아지는 지역이다. [자료 기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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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단순한 예보를 원해

두 번째로 소통(Communication)의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기상청에서 "많은 곳 150㎜ 이상"으로 예보할 때에는 150㎜보다 더 많이 오는 곳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최대 150㎜"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구체적인 숫자를 꼭 집어서 예보해주길 원하기 때문이다.

같은 예보 문구라도 예보관이 생각하는 것과 일반 시민이 받아들이는 게 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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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 국가기상센터에서 예보관들이 예보를 위해 다양한 자료들을 보며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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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예보관들은 강수량을 '확률'로 파악하지만, 이것을 시민들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다.

강수량을 예측할 때 여러 개의 수치예보 모델을 이용하거나, 혹은 같은 수치예보 모델이라도 초기 관측값을 달리해서 여러 가지 예측값을 구한다.

이렇게 해서 얻는 여러 예측값을 바탕으로 특정 지역에 비가 온다고 했을 때, 100㎜ 이상 올 확률이 몇 퍼센트(%)인지, 200㎜ 이상의 비가 내릴 확률은 몇 %인지를 구하게 된다.

실제 예보문에 이런 복잡한 내용을 모두 담을 수는 없다. 시민들이 원하는 대로 간략하게, 꼭 집어서 예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가 200㎜ 이상 내릴 가능성이 있어도 확률이 낮다면 예보문에 반영하기 어렵다.

기상청 관계자는 "지난 10일 예보를 검토할 때 200㎜ 이상 내릴 가능성이 있어서 토론을 벌였지만, 최종적인 예보에서는 제외했다"고 말했다.

◇짧은 집중호우, 예측에 한계

"200㎜의 비가 내릴 것을 정확히 예보하는 '족집게' 수치 예보 모델을 개발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이번처럼 좁은 지역에서, 금방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지는 집중호우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다양한 기상현상 중에서도 집중호우의 경우 지속 시간이 3~12시간 정도로 짧은 편이고, 불과 1~3시간 전에야 예측이 가능하다.

규모가 큰 태풍의 경우 수명이 7~10일이고, 5일 후까지 대체적인 예측이 가능한 것과 차이가 있다.

에너지가 크고, 규모가 큰 기상현상은 주기가 길고 예측하기도 쉽다.

반면 에너지가 작고, 규모가 작은 기상 현상은 주기가 짧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명이 짧은 집중호우를 정확히 예측하려면 수치예보 모델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해상도가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물고기를 잡으려면 그물이 촘촘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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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주에 엄청난 폭우를 쏟아낸 허리케인 하비. 지구온난화로 더 강력한 태풍과 허리케인이 발생한다고 기상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사진 미항공우주국(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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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기상청에서는 한국형 수치 예보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2011년 자체 모델 개발에 착수해 지난해 1단계 개발을 완료했고, 2019년까지 완성할 예정이다.

문제는 한국형 수치모델이 개발되더라도 당장은 전적으로 의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는 잘 맞지만, 어떤 경우에는 엉뚱하게 예보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

여기에다 기후변화, 지구온난화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온난화가 잦은 기상이변을 낳는다는 것은 이제 거의 정설이 됐다.

집중호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기온이 1도 상승하면서 대기가 품을 수 있는 수증기의 양이 7% 늘어난다는 것이다.

늘어난 수증기가 갑자기 폭우도 돌발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최근 미국 텍사스 주를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은 1300㎜의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낸 것도 같은 이유다.

일부에서는 1000년 만에 한 번 나타날 만한 폭우라고 표현하지만, 인류가 강수량을 관측한 것은 그보다 훨씬 짧다.

남쪽에서 수증기가 몰려온 이번 부산 지역 폭우도 마찬가지다.

일부 수치예보를 통해 200㎜가 넘는 폭우가 내릴 가능성도 예견이 됐다.

그렇지만 한여름이 아닌 9월에 2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사례는 거의 없기 때문에 예보관들로서도 200㎜ 이상 쏟아질 것이라고 예보를 써내기가 쉽지 않았다.

비슷한 사례는 지난 2010년 9월에도 있었다. 추석 전날인 9월 21일 하루 서울에 259.5㎜의 비가 퍼부었다.

당시에도 예보관들은 9월 하순에 그렇게 엄청난 폭우가 쏟아질 것으로는 미처 예상하지는 못했다.

결국 예보관들은 강수량 예측이 빗나갔다며 비난을 받았고, 공직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한다며 직무 감찰까지 받아야 했다.

기상학자들은 "관측 기록에도 없는 극단적인 기상 현상, 즉 기상 이변을 정확히 예보하라는 것 자체가 무리"라며 "정확히 예측한다면 그건 더 이상 기상 이변이 아닐 것"이라고 지적한다.

◇양치기 소년이 안 되도록 해야

이번 부산 폭우에 대한 예보를 살펴보면, 기상청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맹비난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특히, 9월에, 태풍 때도 아닌데 15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질 것으로 예보함으로써 최소한의 '경고'는 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강수량까지 정확히 예보하고 맞추고 있는 나라는 없다는 게 기상청의 '결정적인 변명'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기상청을 칭찬하기도 어렵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변명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것은 예보관이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폭우가 잦아지면서 기상 예보관들이 툭하면 '많은 곳 300㎜ 이상'이라고 예보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오보는 피할 수 있겠지만, 매번 300㎜의 집중호우에 대비하고 긴장해야 한다면 그것도 사회적 낭비다.

예보관들이 소신을 가지고 예보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

적절한 수준의 비판과 지적은 있어야 하겠지만, 과도한 비난은 피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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