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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Why] 안부 인사요? 울 아빠한테도 안 하는 걸 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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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윤의 너희가 솔로를 아느냐]

'인맥관리=성공'이라는데 궁금하지 않은 안부 묻고 알랑방귀 뀌는… 난 못해!

뱁새처럼 피 보느니 그냥 나 생긴 대로 살래… 언젠간 원하는 곳 닿겠지

"인마, 너는 어째 통 연락이 없냐? 살았는지 죽었는지 보고를 해야 할 거 아냐?" 가시 돋친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출판사 사장님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이것은 필시 원고 독촉을 위함이렷다! 나는 잔소리가 불호령으로 번지기 전에 알아서 납작 엎드리며 말했다.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제가 열심히는 쓰고 있어요, 있는데! 이상하게 그게 내 마음대로 잘 안 되네? 저는 정말 왜 이 모양 이 꼴일까요? 그냥 나가 뒈질까 봐요!" 그러자 사장님은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누가 원고를 달랬냐고, 잘 지내나 궁금해서 연락해 봤다고, 너도 가끔 나한테 안부 전화를 할 수는 없겠냐고 서운함을 토로하셨다. 우리 아빠한테도 안 하는 안부 전화를 고용주에게 해야 하다니. 먹고살기 더럽게 힘드네, 진짜. 그래도 이왕 연락이 닿은 김에 저녁이나 같이 하기로 했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주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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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의 꾸지람은 밥상 앞에서도 계속됐다. "야, 이 바보야. 일만 잘하면 성공하는 줄 아냐? 진짜 큰사람이 되고 싶으면 인맥 관리를 해야지, 인맥 관리를. 나한테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한테도, 응? '잘 지내시죠' 하면서 안부도 좀 묻고! 수시로 얼굴 내비치면서 눈도장도 좀 찍고! 알랑방귀 뀌어가면서 술도 좀 얻어 마시고! 그렇게 하다 보면 사람들이 너를 이끌어 주는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나는 사장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주먹만 한 상추쌈을 입안에 욱여넣었다. 예, 실컷 말씀하셔요. 저는 그냥 먹기나 할게요. 사장님은 그날따라 먹성 좋은 나를 신통한 눈으로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당부하셨다. "이제부터 내 말대로 해라. 알겠냐?" 나는 입속에 든 것을 아귀아귀 씹어 삼키고는 대답했다. "싫은데요!"

싫다. 아니, 싫다기보다는 못 한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궁금하지도 않은 안부를 묻는 일, 눈에 들기 위해 아부를 떠는 일, 빈말을 진심처럼 포장하는 일 모두. 적성에 맞지 않아 도저히 못 해 먹겠다. 이 모든 일을 능청스럽게 해내며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성큼성큼 앞서 나가는 사람들이 때로는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모습을 어설프게 흉내 내고 싶지는 않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가 가랑이 찢어진다 하지 않았는가. 가랑이 찢어져 피를 보느니 그냥 생긴 대로 사는 편을 택하겠다. 하지만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종종거리는 뱁새 걸음이라도 길을 잃지 않고 꾸준히만 걷는다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먹고 마시다 보니 어느덧 자정을 넘겼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혼자 갈 수 있다고 몇 번을 사양했는데도 사장님은 밤길이 위험하다며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셨다. "들어가라." 한마디 남기고서 터벅터벅 걸어가는 사장님의 뒷모습이 괜스레 짠하다. 항상 제멋대로인 내가 뭐 그리 예쁘다고 이렇게까지 챙겨 주실까. 인맥 관리 같은 건 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곁에 있는 사람마저 소홀히 대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나는 저만치 멀어져 가는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맛있는 거 사 주셔서 감사! 다음에는 더 맛있는 거 사 주실 거죠?" 생전 안 부리던 애교를 다 부리며 다음을 약속했다. 그러자 우리 사장님, 기특해 죽겠다는 듯 껄껄 웃으며 "그려, 먹고 싶은 거 생각해 놔라. 항시 연락하고!" 하신다.

[이주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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