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날 문득]
베란다 창틀 밑에 작게 난 구멍으로 모기가 들어온다고 했다. 집 앞 다이소에 갔더니 모기 퇴치용 베란다 방충망 수선 테이프가 있었다. 그걸 사와서 모든 창문 물 내리는 구멍에 붙였다. 이젠 저놈의 모기가 내 다리 피를 빨지 못하겠지 했다. 다음 날 종아리에 너덧 군데씩 붉게 부어오른 걸 보고서는 이 모기가 도대체 어떻게 집 안에 들어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와서 현관 문 열 때 들어온다는 설이 가장 유력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그 정도로 치열하게 사는 모기라면 내 피 1mL쯤 기부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늘 함께 저녁 먹은 선배가 "모기가 집에 들어오는 것까지는 알겠지만 왜 내 피만 빨아먹는지 너무 궁금하다"고 말했다. 다른 식구들은 모기에게 피 빨리는 일이 없는데 선배만 유독 모기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선배는 천장에서 내려와 침대를 덮는 '공주님 모기장'을 주문할 생각이라고 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모기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그놈은 태어나 보니 모기였고 대한민국 서울에서 어떻게든 남의 피 빨아먹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모기 세상의 〈모기일보〉에서는 "방충망 시설이 날로 견고해져 우리 먹고 살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특집 기사가 나왔을 수도 있다.
나는 모기 편이 아니다. 다만 모기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저 하찮은 모기도 죽어라 남의 종아리 피를 빨며 산다. 누구 종아리를 빨고 싶진 않지만, 모기처럼 열심히 살아야겠다.
[한현우·주말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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