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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5·18 당시 공수부대가 옛 광주교도소 안 3곳에 시신 암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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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교도관, 매장지 처음 밝혀…유족회장 “전면 재조사를”

5·18 민주화운동 때 계엄군으로 투입된 공수부대가 학살한 시민들을 옛 광주교도소 담장 안 3곳에 암매장했다는 당시 교도관의 증언이 나왔다. 5·18 이후 시신을 못 찾아 ‘행방불명자’로 인정된 82명 중 지금까지 시신을 찾지 못한 이는 76명으로 전면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광주교도소 전 교도관 ㄱ씨(71)는 13일 전남일보에 “1980년 5·18 당시 교도소에 주둔하고 있던 공수부대원들이 교도소 안에 시신을 암매장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당시 보안과 소속 교도관이었다. 1989년 국회 광주청문회에서 증언하기도 했지만 암매장지는 밝히지 않았다.

ㄱ씨는 암매장 장소로 교도소장 관사 뒤편, 간부 관사로 향하는 비탈길, 교도소 감시대 옆 공터 3곳을 지목했다. ㄱ씨는 “군인 6~7명이 야전삽을 이용해 직사각형 형태로 잔디를 걷어내고 야전삽 길이만큼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묻고 잔디로 다시 덮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광주에서 전남 담양과 순천으로 향하는 길목인 북구 문흥동에 있었던 광주교도소에는 1980년 5월21일부터 24일까지 3공수여단이 주둔했다. 3공수는 연행한 시민들을 천막을 덮은 트럭으로 이송하면서 최루탄을 터트리고 인근을 지나는 차량에 총격을 가해 많은 시민을 학살했고, 실제 암매장도 이뤄졌다.

검찰은 1995년 7월 ‘5·18 관련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광주교도소에서 3공수에 의해 12명이 사망했고 교도소 부근에 가매장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들의 시신은 ㄱ씨가 ‘암매장지’로 지목한 곳 중 한 곳과 인근 야산에서 1980년 5월24일과 27일 모두 수습됐다.

광주교도소에서 사망한 시민 숫자가 훨씬 많다는 주장도 있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당시 전남북계엄분소 합동수사본부 발표에 따르면 광주교도소를 습격하려다 숨진 ‘폭도’는 27명이라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교도소 내부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는 없었다. 광주교도소는 2015년 북구 삼각동으로 이전했으며 옛 부지는 현재 그대로 남아 있다.

정 전 회장은 “그동안 교도소로 사용돼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던 만큼 이번에는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 헬기 사격 및 전투기 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13일 광주 방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조사 활동에 들어갔다.

특조위원들은 이날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계엄군 헬기 사격 탄흔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남아 있는 전일빌딩을 둘러본 다음 5·18 단체 관계자들과 면담했다.

<강현석·박성진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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