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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뉴스룸/이헌재]착한 해적, 나쁜 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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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리츠(Pittsburgh Pirates)의 홈구장 PNC파크는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구장으로 꼽힌다. 앨러게니강 북쪽에 자리한 PNC파크는 ‘로베르토 클레멘테 브리지’로 남쪽의 다운타운과 연결된다. 팬들은 다운타운에 차를 세워두고 이 다리를 건너 경기장에 입장한다. 수만 명의 팬들이 걸어서 ‘해적선’에 오르는 것 같은 장관이 펼쳐진다. 구장 한쪽에는 조각상이 하나 있다. 팀의 상징 선수 로베르토 클레멘테를 기념하는 조각상이다.

18시즌 동안 3000안타를 쳤으니 야구를 잘하긴 했다. 타격왕을 4차례 차지했고, 15번 올스타에 뽑혔다. 두 차례나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1971년에는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도 뽑혔다. 그렇지만 피츠버그가 조각상을 세우고 다리에 이름을 붙여가면서까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사회공헌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1972년 12월 31일. 그는 구호물품을 가득 실은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니카라과 대지진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비행기는 이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추락했고 그는 38세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사고 이전에도 그는 봉사와 자선활동에 열심이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1971년부터 사회공헌에 열심인 선수에게 주는 ‘커미셔너 상’을 1973년부터 ‘로베르토 클레멘테상’으로 바꿨다. 해마다 30개 팀이 팀당 한 명씩 후보를 추천하면, 그의 부인 베라 클레멘테 여사와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등이 주축이 된 패널이 수상자를 뽑는다. 수상자는 월드시리즈 기간 중 발표된다.

역대 수상자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영원한 캡틴’ 데릭 지터(2009년), ‘괴물 타자’ 앨버트 푸홀스(2008년), LA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2012년) 등이 상을 받았다. 지난주 발표된 올해 후보에도 미겔 카브레라(디트로이트), 호세 알투베(휴스턴), 버스터 포지(샌프란시스코) 등 스타들이 즐비하다.

클레멘테의 반대편에는 ‘나쁜 해적’이 있다. 음주 뺑소니 사고로 선수 생명에 위기를 맞은 강정호(30)다. 재능이라면 그도 뒤지지 않는다. 피츠버그에 입단한 2015년 15개의 홈런을 치며 일약 주전으로 도약했고, 지난해엔 무릎 부상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21개의 홈런을 때렸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는 돋보이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굴러온 복을 스스로 차 버렸다. 조사 과정에서 3차례의 음주운전 전력이 드러났다. 검찰은 벌금형으로 약식기소 했지만 법원은 ‘죄가 중하다’며 징역형을 선고했다. 미국 비자 발급이 거절됐고, 올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아시아경기 금메달 획득으로 얻은 체육연금 수령 자격도 박탈당했다.

피츠버그 구단은 내년 시즌을 대비해 강정호를 도미니칸 윈터리그에서 뛰게 할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 비자 발급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복귀에 성공한다 해도 팬들의 싸늘한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만 강정호 사고 이후에도 여전히 음주운전으로 신세를 망치는 선수들이 나오고 있다.

높은 위치에는 책임이 따른다. 스타일수록 더 바른 생활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2005년 로베르토 클레멘테상 수상자인 존 스몰츠는 이렇게 말했다. “월드시리즈 우승도 해보고, 사이영상(최고 투수에게 주는 상)도 받아봤지만 내게는 이 상이 최고의 상이다. 왜냐하면 이 상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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