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호 문화부 기자 |
아내에게 이런 불만을 얘기했더니 반응이 영 마뜩잖다. 아뿔싸, 내가 또 맥을 잘못 짚었나 보다. 곧장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검색해보니 적지 않은 엄마들이 그 예능을 보며 대리만족하고 있었다. 자녀가 둘인 한 여성은 ‘남편이 적어도 1년에 한 번씩 1박 2일 여행이라도 보내준다더니 둘째 낳은 이후에 한 번도 못 가봤다’고 하소연했는데, 둘째가 이미 세 살이었다. 댓글은 더 슬펐다. ‘아이 재우고 심야 영화도 못 보러 가게 합니다. TV로 보랍니다.’ 1박 2일은커녕 심야 영화 한 편 보기 힘든 현실에서 아내의 여행은 대한민국에서만큼은 명백한 ‘일탈’이었다.
육아와 관련된 신조어를 나열해보면 현실은 더 적나라하다. 워킹맘(Working+Mom)은 있고, 워킹파파는 없다.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뜻하는 라테파파(Latte+Papa)와 프렌디(Friend+Daddy)는 있지만 라테마미와 프렌미는 없다. 요새 특히 지탄의 대상이 되는 ‘맘충(Mom+벌레)’은 있어도 파파충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엄마의 육아를 당연시하는 사회에서, 아빠는 육아에 참여만 해도 칭찬받는 거다. 일부에선 파파충이 없는 이유를 엄마의 물불 안 가리는 자식 사랑 탓이라고도 설명한다. 아빠는 카페에서 이유식·간식 먹인 뒤 깔끔히 치우고, 옆 테이블 아이가 진상을 부려서 혼냈더니 “왜 아이 기를 죽이냐”고 되레 화내지도 않고, 아이 기저귀를 남들 앞에서 갈지도 않으니 욕할 일이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파파충을 떠나 아빠 혼자 카페나 식당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는 모습 자체를 본 적이 없다.
종종 새벽 5~6시쯤 일어나는 생후 12개월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아침 일찍 집 근처 산책을 나간다. 그런데 산책 서너 번 만에 “아빠가 아이와 잘 놀아주는 집”이라고 소문이 났다. 아빠 육아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지난해 전체 육아휴직자(8만9794명) 중 남성(7616명)은 여전히 8.5%(고용노동부 통계)에 불과했다. 엄마의 ‘독박육아’ 현실이 개선되지 않으면 아내의 여행은 영원히 일탈일 뿐이다.
노진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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