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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이슈추적] 병역거부 1심 무죄 판결 올 32건, 그 뒤 인권법연구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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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학술대회 계기 무죄 봇물

지난달엔 14명 무죄, 16명은 실형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희비 갈려

대법원선 상반기 13명 유죄 확정

기로에 선 병역거부 <상> 흔들리는 저울
지난달 전국 법원에서는 병역을 거부한 14명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같은 기간 같은 이유로 다른 법정에 선 16명은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30명 모두 군 복무를 앞둔 20대 남성이다. 그들은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장 4절) 등의 성경 문구를 ‘모든 전쟁을 거부하라’는 명령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1심 재판 결과는 같은 법원에서도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엇갈렸다.

중앙일보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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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대법원은 13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유죄를 확정했지만 1심에서는 32건의 무죄 선고가 쏟아졌다. 지난해까지 나온 1심 무죄 선고 전체(15건)의 두 배가 넘는다. 18개 지방법원 중 10곳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 이 추세면 매년 입영 또는 집총 거부로 고발되는 약 500명 중 50~60명에게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추산된다. 나머지 400여 명은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2014년 12월 대한변호사협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이하 인권법연구회)가 주최한 공동학술대회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점과 대체복무제도의 필요성’을 무죄 판결이 봇물을 이룬 계기로 본다.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인권법연구회는 2011년 출범 때부터 이 문제를 화두로 삼았다. 학술대회 이듬해인 2015년 6건, 지난해 7건의 1심 무죄가 나왔고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도 처음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2004년 5월 21일 첫 1심 무죄 판결이 나오고 같은 해 7월 1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유죄를 확정한 뒤 2014년까지 나온 무죄 판결은 1건(2007년)이었다.

발제자였던 광주지법 김영식 부장판사는 “학술대회 이후 ‘유무죄 판단은 법원 고유 권한인데 굳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기다릴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공유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무죄를 선고한 인천지법 이연진(2월 6일), 서울동부지법 이형주(5월 24일), 부산지법 동부지원 김도균(6월 7일), 제주지법 강재원(8월 11일) 형사단독 판사 등 대부분의 판사가 인권법연구회 소속이다.

중앙일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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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안 전 대법관은 당시 학술대회 기조발제에서 “유엔 자유권 규약 18조 1항이 헌법 6조 1항에 따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인정되는 ‘헌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이란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며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이하 유엔 규약위)의 해석을 따를지, 독자적 해석을 고집할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규약 18조 1항은 “모든 사람은 사상·양심·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다.

2004년 대법원이 “자유권 규약 18조에서 병역법의 적용을 면제받을 권리가 나온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이후 국내외 상황은 크게 변했다. 유엔 규약위는 2011년 3월 우리 정부에 “자신의 양심 또는 신앙과 조화되지 않으면 군 복무 면제를 요청할 수 있으며 그러한 권리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최근 나온 무죄 판결문에는 예외 없이 “유엔 자유권 규약의 해석상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행사는 병역거부가 허용되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판단 이유가 길게 적혀 있다. 2015년 이전 2건의 무죄 판결이 주로 헌법 해석에서 근거를 찾은 것과 달라진 점이다. 김영식 부장판사는 “병역법 체계가 유사한 많은 나라가 유엔 규약위 해석을 따르는데 대법원만 ‘권고적 효력만 있다’고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 유죄 판결을 내린 한 판사는 “현행법과 해석상 결국 실형이 선고되는 상황에서 판례에 맞서는 건 법적 안정성만 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글 싣는 순서 >
<상> 흔들리는 저울

<중> 두 거부자 이야기

<하> 10년 헛돈 세 바퀴

임장혁·여성국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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