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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가족 수 만큼 ‘생존 배낭’ 현관에 놓고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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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9·12 지진 발생 1년 르포

곳곳서 아직 복구 못한 상흔 보여

일상생활 되찾았지만, 불안감 남아

훼손된 문화재 중 14%는 복구 안 돼

재난문자 등 지진 대응 체계는 개선

“관광객 안심하고 다시 경주 찾길”

중앙일보

‘경주 9·12 지진’ 발생 1년을 하루 앞둔 11일 경북 경주시 사정동 한 주택이 지진 피해로 부서진 채 1년이지나도록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부서진 한옥 앞을 지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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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노동동에 사는 윤현승(44)씨는 현관 신발장 안에 붉은색 배낭을 가족 수만큼 둔 채 생활한다. 배낭 안엔 생수와 전투식량·손전등·헬멧·라디오 등이 들어 있다. 이른바 ‘생존 배낭’(작은 사진)이다.

윤씨는 12일 “누군가는 ‘아직도 지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느냐’고 핀잔을 주는데 언제 지진이 일어날지 모르니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9월 12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오금이 저린다. 퇴근 후 귀가하는 길 강한 진동(오후 7시44분 5.1 지진)을 느낀 데 이어, 집에서 다시 더 강력한 진동(오후 8시32분 5.8 지진)을 겪었던 기억이다. 진열장에 있던 물건들이 쏟아지고 스마트폰마저 먹통이 되니 그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해 9월 경주시 남남서쪽 8.7㎞ 지역에서 규모 5.8 강진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이 지진은 국내에서 계기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강력했다. 지진으로 54세대 111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재산 피해액은 6개 시·도에서 총 110억2000여만원, 경주시에서만 92억8400만원으로 집계됐다. 진앙지였던 경주시 내남면에선 아직도 곳곳에 금이 간 담벼락이나 부서진 채 방치된 기와지붕을 찾아볼 수 있다.

내남면에서 한식당을 하는 김모(43)씨는 “지진 직후 2~3달간 방문 닫히는 소리가 조금만 커도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라고 했다.

9·12 지진 이후 현재까지 634차례의 여진이 이어졌다. 지금 경주시민들은 웬만한 여진에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지진에 익숙해졌다. 이동명 내남면 부면장은 “주민들이 일상생활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 어느 곳에서 지진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다”고 전했다.

지진에 대한 불안감은 관광객 감소로도 이어졌다. 평소엔 경주에 연간 100만여 명의 수학여행단이 몰려오곤 했다. 하지만 지난해 지진 이후 끊기다시피 했다. 올 봄에는 학교 30여 곳 5000여 명만이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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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의 흔적은 기와 지붕에도 여실히 남아 있다. 복구하지 못했거나 전통 기와가 아닌 함석 기와로 복구한 경우가 많아서다. 아직도 방치된 기와 지붕은 비싼 복구 비용에 쉽사리 손을 대지 못한 경우다. 100㎡ 크기 한옥 주택 지붕엔 장당 1600~2300원씩 하는 기와 1만3000여 장이 들어 복구 비용이 수천만원에 이른다. 한옥보존지구인 경주시 황남동에선 함석 기와가 올려진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함석 기와는 가격이 싸고 내구력이 높지만 전통미가 떨어지고 조례상 불법이다. 지진으로 훼손된 국가지정문화재 52건과 시·도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 48건 중 14건(14%)도 아직 복구되지 않았다.

경주와 인접한 울산 울주군에서도 지진 피해가 컸다. 울주군은 당시 11억6000만원의 피해가 났다. 주택 피해는 879건이었다. 울주군 두서면 내와마을에 사는 최순남(74)씨는 “한 달 전까지 지진 공포에 비행기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속이 울렁거렸다”고 말했다.

지진을 계기로 개선된 부분도 있다. 지진 대응 체계 개선, 지진 교육 강화, 문화재 보호 체계 보완 등이다. 행정안전부와 기상청으로 나눠 운영되던 긴급재난문자 발송 체계는 기상청으로 일원화됐다. 어린이집과 학교에선 지진 교육을 강화했다.

경주시는 요즘 추석연휴와 가을 여행주간을 앞두고 관광객 끌어모으기에도 나섰다. 보문관광단지 경관조명을 개선하고 화장실 등 공공건물 확충, 안내간판 정비를 하고 있다. 최양식 경주시장은 “지자체와 전문가가 합심해 지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니 관광객들도 안심하고 경주를 찾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경주·울산=김정석·최은경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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