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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왜 신고리 5·6호기인가](1)신고리 5·6호기 중단 땐 ‘밀양 송전탑’도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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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10년간의 외침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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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원전 5·6호기가 안 지어지면 송전탑부터 뽑아야지예.”

경남 밀양에 살면서 지난 10년간 ‘밀양 할매들’과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을 벌인 구미현씨(68)에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밀양 송전탑을 막을 중요한 수단이다. 밀양 송전탑과 신고리 5·6호기. 무관해 보이는 두 전력 설비는 어떤 관계로 얽혀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밀양 초고압 송전탑 건설은 신고리 5·6호기 가동을 전제로 추진된 사업이다. 필요한 곳에서 전기를 생산해 쓰는 ‘지역분산형 발전방식’이 아니라 원전이나 석탄화력발전 같은 중앙집중식 발전방식은 장거리 송전선을 필요로 한다. 연료공급과 냉각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닷가 근처에 원전을 짓고 대규모로 생산된 전력을 대도시에 공급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초고압 송전탑을 필요로 한다.

■ 초고압 송전선이 필요한 원전

밀양 송전탑은 건설 계획 단계부터 원전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정부는 2000년 1월 확정된 제5차 장기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2015년까지 8기의 신규 원전을 더 짓기로 했다. 현재 신고리 부지에 4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는 안이 포함됐다. 새로 지을 원전에서 나오는 전력을 원활하게 수송하기 위해 밀양 초고압 송전탑 건설 구상이 제시된 것이다.

여기에는 전력 발전과 송전 및 배전을 아우르는 전력구조의 특징이 녹아 있다. 우리나라는 몇몇 지역에 위치한 소수의 발전단지가 대규모 전력을 생산해 전 국토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생산된 전력은 대부분 수도권이나 산업단지로 수송된다. 이 때문에 많은 양의 전력을 원거리 수송해야 하는데, 그 해결책으로 초고압 송전탑이 제시되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고리 원전 부지에서만 6기의 원전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인접한 지역에 신고리 원전 부지를 조성했다. 초기 계획에는 4기의 원전을 건설하는 안만 담겼지만, 몇 번의 조정을 거치며 신고리 부지에 들어설 원전은 8기까지 늘었다.

그중에서도 밀양의 초고압 송전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발전소는 신고리 5·6호기였다. 2013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한전 국정감사에서 당시 민주당 소속 조경태 의원(현 자유한국당)은 조환익 한전 사장을 상대로 “신고리 5·6호기를 추가적으로 건설하지 않으면 굳이 765㎸를 지을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물었다. 이에 조 사장은 “물론 지금 (신고리) 3·4호기만 가지고, 3·4호기만 건설하고 끝난다면 기술적으로 새로 짓는 북경남-신고리 노선을 345(㎸)로 운영해도 된다”며 “하지만 5·6호기를 감안하면 그것은 안된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아직 계획도 승인도 나지 않은 신고리 5·6·7·8호기를 대비해서 지금 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논리적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한전과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때문에 초고압 송전탑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신고리 3·4호기의 상업운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밀어붙였다.

결국 밀양 초고압 송전탑은 2014년 12월 모두 건설됐지만, 신고리 원전은 당초 계획보다 건설 및 운영이 늦어지면서 송전탑의 평균 이용률은 높지 않다. 한전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밀양 송전탑의 평균 이용률은 30%를 넘지 못한다.

■ 끝나지 않은 밀양 송전탑 투쟁

정부는 신고리 원전에서 경남 창녕의 ‘북경남변전소’를 잇는 송전선로를 765㎸(76만5000V) 초고압 송전탑으로 짓기로 했다. 765㎸가 345㎸에 비해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전력 수송 시 발생하는 손실을 345㎸의 20%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높아진 효율만큼 765㎸ 송전탑은 강력한 전자파를 발산한다. 대한전기학회가 2010년 내놓은 ‘가공 송전선로 전자계 노출량 조사 연구보고서’를 보면, 765㎸ 송전탑을 건설할 경우 3mG(밀리가우스) 이상의 전자파에 상시 노출되는 영역이 반경 80m에 이른다. 345㎸의 40m에 비해 2배 넓은 셈이다. 밀양 주민들은 상시 전자파 노출로 인한 건강 악화를 우려했다. 1992년 스웨덴에서 발간된 ‘페이칭 보고서’는 송전선로 인근 지역의 17살 이하 청소년이 3mG 이상의 전자파에 상시 노출될 경우 일반 지역의 청소년보다 백혈병 발병률이 3.8배 높다고 분석했다.

고압 송전탑은 주민들의 재산 가치도 하락시킨다. 2012년 1월 밀양에서는 이치우씨(당시 74살)가 자신의 몸에 스스로 불을 지르는 일이 발생했다. 한전은 이씨의 논에 송전탑을 세우려 했다. 이씨와 두 동생이 소유한 논의 시세는 6억9000만원이었지만 한전은 철탑 세울 곳만 사겠다며 8700만원을 제시했다. 이씨는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는 말을 남기고 분신했고, 끝내 숨을 거뒀다.

“공권력에 당하면서 무력함을 느꼈던” 밀양 할매들은 ‘공론화위’ 출범으로 다시 바빠졌다. 아직까지도 한전과 합의를 거부하고 있는 150가구가 신고리 5·6호기 백지화와 탈핵·탈송전탑을 알리는 소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바느질방을 운영하며 그 수익을 탈핵운동에 보태고 있는 구미현씨는 “많은 발전소들을 가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전기가 부족하지 않다는 얘기”라며 “원전을 지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밀양 주민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송전탑 반대 활동을 벌여온 밀양 주민 안병수씨(69)는 “신고리 5·6호기 공사가 중단되면 밀양에 철탑 지나갈 필요 없다 아닙니까”라며 “철탑은 어차피 섰지만 위험한 원전을 안 짓는 쪽으로 계속 싸워야지예”라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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