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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유튜브에 ‘B급 세무방송’…고객도 연결되니 생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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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출신 공인회계사 권기욱씨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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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웃기는 재주는 있는 것 같은데, 무대에만 서면 몸이 굳는 거예요. 얼굴 표정도 그렇고. 몸이 좀 유연해지면 나아질까 싶어 발레도 배워봤지만 신통치 않더라고요. 결국 개그맨의 길을 접었죠.”

공인회계사 권기욱씨(33)는 군 복무 시절 개그맨을 꿈꿨다. 입대 전부터 학교 축제나 가요제, MT에서 MC를 도맡으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학내 유명인사로 통하던 터였다. 휴가를 받기 위해 전우들과 콩트를 짜고, 부대 행사에서 MC를 보며 남다른 입담을 뽐냈다.

지난 5일 경향신문과 만난 권씨는 우연찮은 기회로 개그 극단에 입단하게 됐다고 했다. “복학한 후 개그맨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개그맨 지망생들이 모인 카페를 알게 됐어요. 거기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대학로에서 길거리 공연을 선보였죠. 그러다 대학로 개그 극단에 특채로 입단하게 됐죠.”

개그맨에 한 발짝 다가섰다고 생각했지만, 극단 생활은 기대와 많이 달랐다. 극단과 강원도의 한 리조트가 맺은 계약에 따라 리조트 행사에 동원돼 허드렛일부터 했다. “개그맨이 되고 싶어 극단에 들어갔는데, 극단에서 ‘막내 기수들이 거쳐야 할 코스’라며 우리를 리조트에 보내는 겁니다. 8개월 동안 리조트에서 열리는 행사 MC를 맡거나 도우미를 하는 식이었죠. 그렇게 리조트에서 먹고 자며 종일 일해 한 달에 손에 쥔 돈은 70만원 수준이었습니다.”

서울 극단에 돌아와서도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올라선 무대였지만, 그는 이번엔 더 큰 벽에 맞닥뜨렸다. 몸짓과 표정 등 연기가 되지 않았다. “무대에만 서면 얼굴과 몸이 굳어버리는 거예요. 발레도 해보고, 별짓을 다했는데도 안되더라고요.” 동생의 조언은 결정타였다. 그의 동생은 영화배우이자 뮤지컬 배우인 권소현씨다. “동생과 대학로에서 같이 생활했어요. 배우인 소현이가 제 연기를 보고 정말 안되겠다면서 차라리 (개그) 작가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더라고요.”

권씨는 결국 2년 남짓한 극단 생활을 접어야 했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온 그는 학내 고시반에서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회계사 시험을 준비 중인 친구의 권유에 혹해서 시작한 공부였다.

“극단을 나온 뒤 고향인 경북 안동에 잠깐 머물렀는데, ‘할매’가 저보고 ‘그러다 날건달이 될 것 같다’고 걱정스러워할 만큼 방황을 심하게 했습니다. 학교엔 돌아왔지만 하고 싶은 건 없었죠. 그때 고등학교 밴드 활동을 같이하던 친구가 공인회계사 1차 시험에 합격했다며 저에게도 추천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정도는 너도 할 수 있을 만큼 쉽다’며 용기를 줬어요. 하지만 막상 공부를 시작하니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욕도 많이 하고 그랬습니다(웃음).”

쥐꼬리만 한 돈이었지만, 극단을 나오니 생계가 막막했다. 시험 준비를 하면서 학교 구내식당에서 밥을 퍼주고, 인형탈을 쓰고 행사 도우미로 나서기도 했다. 3년6개월간의 공부 끝에 2013년 8월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합격한 그는 “공부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정말 맞다”며 “시험은 학문의 탐구보다 공부하는 법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자신의 성향에 맞는 방법을 찾아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고 공부 노하우를 소개했다.

2년가량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7월 개인 사무실을 연 그는 개인(자영업)과 법인 등 80여곳의 재무 관리를 돕고 있다. 하지만 개그의 ‘끼’를 완전히 접지는 않았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에서 ‘김권의 세무방송’이란 타이틀로 세무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 극단 동기이자 지금은 한 방송사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는 김범준씨와 진행하는 ‘B급 방송’이다. “벌써 22회를 SNS에 업로드했네요. 개그감을 살려 세무 지식을 전하고 있죠. 세무계 최신 이슈들을 주제로 2주에 한 번씩 10분 분량으로 방송하는데, 대본도 없고 편집도 안 하죠. 말장난도 많이 하고. 그런데도 조회수가 꾸준히 나오고 반응도 나쁘지 않아요. 특히 젊은 사장님들이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그러다 가끔 고객으로 연결되기도 하면 저야 생큐죠(웃음).”

권씨는 인터뷰 내내 밝았다. ‘노예생활이나 다름없었다’는 극단 생활을 얘기할 때도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권씨는 “고객수가 200곳을 넘어서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면 한식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어머님에게 식당을 차려주고 싶다”고 했다.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지만, 단 한 번도 실패를 생각하지 않았어요. 경험해보지 않고 가부를 따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모든 사고를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하라고 하신 어머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나중에 어머니 식당 옆에 제가 좋아하는 닭발 전문점을 만드는 게 저의 꿈입니다.”

<안광호 기자·정두용 인턴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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