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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명단 작성에 꼬박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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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기철 전 진실화해위 조사팀장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 펴내

희생자 1만4343명 시군별로 수록

진실위 보고서보다 4천여명 많아



한겨레

신기철 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인권평화연구소장.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신기철(54)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팀장이 최근 펴낸 책 <한국전쟁과 버림받은 인권>(인권평화연구소)엔 한국전쟁 전후로 희생당한 민간인 1만4343명의 이름이 모두 실려 있다. 시·군 단위까지 분류해 놓았다. “진실화해위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1년 간 주말마다 작업했어요.” 왜 이처럼 고단하고 지루한 작업을 했을까? 9일 전화로 물었다. 그는 지금 재단법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인권평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진실화해위가 종합보고서를 낼 때 희생자를 9800여명 정도로 추정했어요. 제가 다시 통계를 내니 1만4천명이 넘었어요. 이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제 주장이 맞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희생자 명단을 다 적었어요.”

진실화해위는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부터 노태우 정권기까지의 인권침해사건 등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2005년 12월 출범해 1만1175건의 신청사건 등을 조사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2월 문을 닫았다. 그는 진실화해위 집단희생조사국 조사3팀장을 지냈다. “진실화해위에서 통계를 낼 때 사건 건수와 희생자 명수를 엄밀히 구분하지 않았어요. 희생자가 여럿인데도 한 명으로 처리된 사건이 꽤 됩니다.”

그는 위원회가 없어진 뒤에도 전국을 돌며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확인한 민간인 희생자 추가 사례도 2천여 명이나 된다. “현재 활동중인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가 50군데 정도 됩니다. 이 분들 도움으로 추가 사례를 확인했어요. 10여 군데는 제가 직접 내려가 조사했죠. 지역별로 보면 충청 지역이 상대적으로 조사가 미흡한 곳입니다. 피해가 컸던 홍성 아산 지역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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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한국전쟁 이전, 전쟁 직후, 수복 이후, 토벌, 미군 폭격 등으로 구분해 당시 민간인 피해 상황을 정리하고 각 유형에 따른 시도별 피해자 수치를 보여준다. 이 역시 필자가 진실화해위 자료를 토대로 재분류한 결과물이다. 이를 보면 이승만 단독정부가 들어서서 전쟁이 나기 전까지는 호남, 전쟁 발발 직후 벌어진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피해는 경북과 경남, 수복 뒤 부역자 학살 피해는 충청 지역이 심했음을 알 수 있다. 국민보도연맹 관련 피해는 가해자인 군·경찰이 지역에서 활동한 시기가 길수록 컸고, 충청 지역에서 수복 뒤 부역 혐의로 많은 민간인이 피해를 당한 것은 “지역 공동체가 살아 있었던 서산 태안 지역에서 2천명의 피해자가 확인” 된 게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지난 촛불 때 일부 태극기 시위자가 ‘군이 나서야 한다’고 했죠. 한국 전쟁 시절이 떠올랐어요. 이승만 독재 권력은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편을 들어 자기 국민을 살해했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피해를 좌우 갈등으로 봐서는 안됩니다. 독재 권력이 ‘내 말 들을래, 아니면 죽을래’ 협박했고 권력은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국민에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게 본질이죠.” 그는 “실제 벌어진 일을 이념의 눈으로 바라봐선 안된다”며 “실체를 정확히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진실이 제대로 드러나면 시민들도 거짓된 이념에 의해 움직이지 않겠지요.”

계획을 물었다.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 백서를 준비하고 있어요. 장기수들 이야기도 책으로 써 볼 생각입니다. 장기수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전쟁 때 간신히 학살을 모면하고 옥에 끌려가신 분들이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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