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9 (일)

"볼수 없는 책 세상 목소리로 전해드려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김정미 기자]
중부매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6년째 낭독봉사를 하고 있는 김영희씨(왼쪽)와 이지선 사회복지사(오른쪽)는 "전국 시각장애인도서관에서 점자도서와 녹음도서를 공유할 수 있다면 도서 이용의 어려움도 해소될 것"이라며 "공공도서관이 약자를 배려하는 도서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정미
[중부매일 김정미 기자] "누군가 더 잘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가 빌려서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녹음하고 있어요. 제가 녹음한 책을 시각장애인이 재미있고 편하게 읽어준다면 그것만큼 큰 보람이 없겠지요. 화요일 오전만큼은 어떤 약속도 잡지 않은 지 벌써 6년이 됐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이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목소리를 나누는 일은 제게 더 큰 기쁨이고 선물입니다." - 낭독봉사자 김영희

김영희씨의 화요일 아침은 무지개도서관에서 시작된다. 도서관 직원들과 함께 때로는 조금 더 일찍 출근해 오전 시간을 녹음실에서 보낸 지 꼬박 6년이 됐다. 무지개도서관은 사단법인 충북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에서 운영하는 시각장애인 전용 도서관. 실명으로 인해 문자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도서와 명함, 각종 홍보자료 인쇄물을 점자, 녹음으로 제작해 제공하고 있다. 김영희씨는 베스트셀러와 희망도서를 녹음해 테이프와 CD, mp3 파일로 제작해주는 낭독봉사를 하고 있다.

#책 읽어주는 우리 이웃들

중부매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문자 도서를 음성으로 녹음하는 모습. 낭독봉사자들은 베스트셀러와 시각장애인들의 희망도서를 우선 녹음해주고 있다. / 김정미
무지개도서관은 2006년 7월 청주시로부터 시설 허가를 받고 그해 10월 문화관광부 특수도서관으로 등록했다. 충북시각장애인도서관으로 불리다 2008년부터 무지개도서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일반인과 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는 도서관으로 일반 도서를 비롯해 점자도서와 녹음도서, 전자도서, CD도서, 비디오 등을 보유하고 있다. 녹음도서는 약 300여권 정도. 낭독봉사에 참여하는 80여명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점자 도서 제작을 위해 워드 입력 봉사(프로그램을 통해 점자로 변환)를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녹음도서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최근 몇 년 사이 낭독 봉사자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점자는 손가락 감각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점역을 위해서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또 완성된 점자책은 원본보다 부피가 더 크기 때문에 녹음도서를 찾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지요."

무지개도서관의 이지선 사회복지사는 특별한 기구가 필요하지 않고 휴대가 쉬운 녹음도서가 시각장애인의 독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부매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청주 '무지개도서관'은 일반인과 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는 도서관으로 일반도서를 비롯해 점자도서와 녹음도서, 전자도서, CD도서, 비디오 등을 보유하고 있다. / 김정미
시간이 지날수록 점자가 눌려 영구 보관이 어렵다는 점, 중도실명자는 점자 학습을 어려워 한다는 점도 녹음 도서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이유다.

녹음도서 분야는 소설, 철학, 종교, 에세이, 시 등 따로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베스트셀러와 시각장애인들의 희망도서를 우선 녹음해주고 있다. 문자 도서를 음성화한 것이기 때문에 낭독에 참여하는 봉사자들의 음성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김영희씨는 "한 달을 연습하며 낭독의 기술을 익혔다"는 말로 기억을 더듬었다.

"시각 장애인은 귀가 엄청 발달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숨소리, 침 삼키는 소리, 페이지 넘기는 소리도 신경에 거슬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조심스럽더라고요. 한 번 녹음실에 들어가면 40여분 동안 한 면을 녹음할 수 있는데 그 시간만큼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있어요."

김영희씨는 더 많은 책을 낭독해야 한다는 욕심보다 목소리를 듣는 시각장애인의 편안함이 자신에게는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낭독봉사자 1명이 매주 1회 1시간30분의 주어진 시간을 모두 녹음한다고 할때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 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이지선 사회복지사는 낭독봉사자들은 늘어나고 있는데 열악한 녹음 환경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약자들을 위한 도서관이라면

중부매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청주 '무지개도서관'은 일반인과 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는 도서관으로 일반도서를 비롯해 점자도서와 녹음도서, 전자도서, CD도서, 비디오 등을 보유하고 있다. / 김정미
"녹음실이 3개밖에 안되다 보니 녹음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요. 약자들에 대한 도서 선택권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책 기부, 지원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낭독봉사자들을 위한 녹음시설이 추가로 갖춰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이지선 사회복지사가 녹음시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자 김영희씨는 접근성이 가장 큰 문제라고 거들었다.

"무지개도서관은 시각장애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접근이 어려워요. 저는 우편 대여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이왕이면 공공도서관에서 점자 책, 녹음도서를 대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공공도서관마다 시민들이 낭독봉사를 할 수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도서를 시각장애인들이 대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시각장애인이 점자 도서를 대여하려면 책을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을 검색해 지역별로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 점자, 녹음도서를 보유한 도서관마다 보유 도서가 다르다보니 중복도서가 생길 수 있고 다양성은 떨어진다.

이지선 사회복지사는 "전국의 시각장애인도서관에서 점자도서와 녹음도서를 공유할 수 있다면 도서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도서 이용의 어려움도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지선 사회복지사와 김영희씨는 공공도서관이 약자를 배려하는 도서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중부매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6년째 낭독봉사를 하고 있는 김영희씨
김영희씨는 최근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비교적 읽기 쉬운 에세이에서 벗어나 대화체가 많은 <나니아 연대기>를 낭독하고 있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대화체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용기가 필요했어요. 때로는 동물의 입장에서 때로는 여자, 혹은 남자, 심술궂은 아이, 비열한 어른의 느낌을 표현해야 하니까요. 새로운 도전이 즐거우면서도 이왕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녹음도서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우리는 주로 어른도서를 녹음하지만, 여건이 되면 시각장애 부모를 둔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 동화 녹음에도 참여해보고 싶어요."

세상의 지식을 전하는 목소리 기부자들은 주부, 정치인, 방송인, 회사원 등 하는 일은 서로 다르지만 무지개 같은 음색으로 조화를 이룬다. 충북도의회 이숙애 의원, 방송인 정은영씨, CJB 황수동 아나운서와 안정은 아나운서 등이 정기적으로 무지개도서관의 녹음실을 찾고 있다.

이지선 사회복지사는 책을 기부하는 사람들, 워드 봉사를 통해 점자 도서 인쇄를 돕는 사람들, 목소리를 기부하는 녹음봉사자들, 시각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이 무지개도서관을 운영하는 진짜 주인공들이라고 소개했다. (043-237-5544)

<저작권자 Copyright ⓒ 중부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