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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단독] 슈뢰더 전 독일 총리 "지도자는 인기 없는 결정도 내릴 용기 지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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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출간 기념 방한 슈뢰더 前총리

매일경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10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사진촬영에 임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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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는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문제도 지금이 아니라 후임자를 위한 준비를 다졌으면 좋겠습니다. 인기에 반하는 결정이라도 감행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자서전 '문명국가로의 귀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슈뢰더 전 총리는 지난 8일 매일경제신문과 서면으로, 10일에는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새로운 과제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해 정치권은 이에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슈뢰더 전 총리의 발언이 무게감을 갖는 이유는 그 스스로 실천을 통해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는 총리 시절 '어젠다 2010'으로 불리는 독일 개혁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어젠다 2010'은 사민당과 노동계가 모두 반대하는 정책이었지만 통일 후유증과 성장 둔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슈뢰더 전 총리는 11일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과 '사회적 대타협'을 주제로 대담하고 오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경기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해 할머니들을 위로할 예정이다.

―오늘 욕을 먹더라도 내일 국가에 이익이 될 정책을 펴는 것은 정치인들에게는 어려운 과제인 것 같습니다.

▷모든 국가는 저마다 문화·정치·경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길을 스스로 모색해야 합니다. 정치인은 무엇보다 국가의 안녕을 염두에 두어야 하죠. 정치인으로서 재선의 확률이 낮아진다 하더라도 국가의 안녕에 필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독일과 한국은 선진 산업국으로서 유사한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양국 모두 국가 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며, 디지털화로 인해 새로운 노동모델이 요구됩니다. 12년 전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제시된 어젠다 2010을 통해 우리는 독일 사회에 필요한 해답을 찾아냈습니다. 이후 실업률이 감소했고, 독일 경제는 글로벌 경제·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매우 긍정적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새로운 과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며, 정치권은 이에 적절히 반응해야 합니다.

―'어젠다 2010'은 독일이 제조업을 개혁해 나가는 '인더스트리4.0'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인더스트리4.0에서 유래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유행하는데, 이때 리더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모든 선진 산업국은 번영과 사회 안정,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 지속적인 혁신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지속적인 혁신은 산업의 디지털화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중소기업이 산업의 디지털화라는 추세에 잘 대비할 수 있게 국가가 적극 지원해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가 기술 및 학술 분야 지식과 프로세스, 결과물의 우위에 달려 있다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교육과 직업교육, 연구와 연구의 사회적 활용을 위한 여건을 총체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혁신 친화적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의 과제입니다. 한국과 독일 모두 이러한 국가적 과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에 성공한 나라 지도자로서 북핵 문제에 대해 조언한다면.

▷북한 정권은 세계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존재입니다. 국제사회는 대한민국을 비롯해 위협에 처해 있는 아시아의 다른 모든 국가들과 연대를 이뤄야 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제재 조치를 엄격하게 이행함으로써 북한이 국제법상 금지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이끌어내야 합니다. 국가 간 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다국적 협력주의'가 최선의 전제조건이라 확신합니다. 지구상 어느 나라도, 심지어 미국과 같은 초강력 국가도 이런 문제를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고 함께 힘을 합쳐야만 합니다.

―독일은 성공적인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독일은 2000년에 탈원전을 결의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원전 사고를 경험했습니다. 또한 폐기물 문제는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독일에서 탈원전이 결의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에너지 기업들과 합의를 모색하고 도출해 냈기 때문입니다. 탈원전은 약 25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이행돼야 할 장기적인 프로그램입니다. 다시 말해 당시 독일 에너지 기업들은 신뢰할 만한 계획 기반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 풍력, 태양열, 수력 같은 재생가능 에너지의 확장이 병행됐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제 후임 총리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을 서둘러 진행한 결과 전력 가격이 급상승했고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많은 투자가 필요하게 됐습니다.

―탈원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나요. 미래의 에너지 산업은 어떤 형태로 전개될 것으로 보는지요.

▷에너지 정책은 응당 국가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는 한국 내에서 결정될 문제이며, 저는 한국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단 독일의 경험을 토대로 보면 신뢰와 안전, 지불 능력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에너지와 천연자원의 공급은 모든 선진 산업국에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이 분야에서의 변화는 항상 신중하고 면밀하게 진행돼야 할 것입니다.

―자서전에 스스로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이를 통해 세상에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정치적 삶에서 항상 사회 개선을 추구했습니다. 제가 내린 결정이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예컨대 어젠다 2010 개혁정책과 이라크 전쟁 불참 등 중요하고 적절한 결정도 있었습니다. 정치인들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국가와 국민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된다면 인기에 반하는 결정 또한 감행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저는 이를 제 정치 지침으로 삼고자 노력해왔습니다.

[김기철 기자 / 신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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