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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일진이 조폭 맞서 싸우는 영웅?…학폭 권하는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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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들도 보는 만화에…일진 미화하는 내용 가득

"일진의 자격 요건 첫 번째는 싸움과 힘, 두 번째는 패기와 리더십, 세 번째는 외모야…몇몇 악덕한 일진이 약한 찐따들을 괴롭히기도 하는데 이유와 종류는 다양해."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에 연재되며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꾸준히 상위권 인기를 기록하는 한 웹툰의 지난해 7월 게재분 중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은 학교폭력의 주범인 '일진'을 패기·리더십과 멋진 외모를 겸비한 '능력자'로 묘사하고, '착한 일진'을 합리화하는 대사 때문에 당시 네티즌 사이에서도 논란이 불거졌다. "착한 일진은 말도 안 된다"는 비판 댓글에는 "그렇게 따지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태클'이 여지없이 따라붙었고, 결국 이런 논쟁 글에는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100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최근 부산에서 발생한 여중생 집단폭행에 이어 강원, 아산, 서울 등에서도 유사 사건이 잇따르며 청소년 폭력 범죄의 심각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급속히 청소년 주류 문화로 자리 잡은 웹툰이 학교폭력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0대가 주로 보는 학원물에 폭력 행사 주체인 일진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피해자를 '찐따'로 부르는 등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장면이 많다는 것이다. 폭력 사건이 있을 때마다 영화 드라마 등 각종 매체의 폭력성 논란이 불거지곤 했지만 최근 웹툰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큰 점을 고려할 때 더 이상 '만화일 뿐'이라고 무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10일 매일경제가 네이버에 연재되고 있는 주요 웹툰을 살펴본 결과 최근 잇따른 학교폭력 가해자 연령대인 '10대 여학생'이 가장 많이 보는 상위 10개 중 3개는 '일진 미화' 소지로 비판받고 있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네이버에 '일진 미화 웹툰'을 검색하면 나타나는 사용자 추천 결과에 포함됐다. 이외에도 10대 청소년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14개 웹툰이 일진 미화 웹툰 검색의 추천 결과로 표시됐다. 이들 웹툰에는 등장인물이 각종 욕설이나 폭력을 행사하고 음주·흡연을 즐기는 모습이 빈번하게 묘사된다. 갈등이나 문제를 폭력을 통해 해소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곤경에 처한 친구를 위해 조직폭력배와 패싸움을 벌이는 '영웅적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또래를 상대로 행사하는 폭력은 피해자가 전개상 '맞아도 싼' 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당화되는 장면도 나온다.

실제 10대에게 인기를 끄는 한 웹툰에서도 등장인물이 헛소문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집단 괴롭힘이나 구타를 당하는 모습이 그려지자 독자들은 댓글로 '속이 시원하다'거나 '고소하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이런 댓글은 적게는 5만명, 많게는 12만명 이상이 공감을 표시해 '베스트(BEST) 댓글'이 됐다. 일진에 가입한 경험이 있다는 고교생 이 모양(18)은 "고교 진학 후 웹툰이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옷도 잘 입고 서로를 보호해주는 일진이 멋져 보여 어울리게 됐다"며 "하지만 음주·흡연은 기본에 어른과 괜히 시비가 붙는 게 일상이었다"고 털어놨다.

웹툰작가를 비롯한 일부 전문가들은 '웹툰 속 폭력은 방송·영화·서적 등 다양한 매체가 묘사해 온 폭력과 다를 바 없다'고 항변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웹툰이 청소년 태도에 미치는 영향 및 규제에 대한 연구' 보고서는 "미디어의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미디어 폭력의 원죄론이 비판적 시선을 미디어에 고정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청소년을 둘러싼 수많은 문제를 은폐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타인의 행동을 따라하고자 하는 모방심리는 인간의 본능"이라며 "아직 판단력이 부족할 수 있는 청소년기에는 그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청소년을 주 대상으로 하는 학원물에 대해선 생산·유통자의 자율적 숙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연호 기자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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