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3 (목)

“개와 함께한 내 인생은 왜 부정당해야 하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애니멀피플] 대한민국 개고기 보고서

② 개농장주는 어떻게 사는가 (상)

전국 개농장주 10여명 인터뷰

돈도 ‘빽’도 없어 시작한 사업

육견·시설에 수천만원 투자했는데

개값 떨어져 이미 생계 어려워

범죄집단 취급 여론 견디기 힘들어

육견단체 “특별법 제정하면 전업 의사”



한겨레

대부분의 개농장주는 경제적 빈곤과 미래에 대한 불안, 사회에서의 소외 등을 호소하고 있다. 개고기 산업이 자연 소멸할 것이라는 좌절과 우려도 있지만 정부나 동물보호단체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이 산업이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네셔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숨통을 끊어놓는군요. (중략) 이 세상의 어떤 가치도 인간의 생존권보다 우선하는 건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대화의 처음과 마지막이었다. <애니멀피플>(애피)이 보도한 개고기에서 항생제가 검출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한 식용견 농장주가 보내온 메시지였다.

이 농장주는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언론에 말해봤자 농장주 입장에서 기사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며칠 후, 법무법인 명의로 개고기에 든 항생제 성분을 검사한 연구기관과 동물보호단체에 공동으로 항생제 검사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 또 이달 말께 항의 차원으로 청와대 앞 상경투쟁을 할 수도 있다고 알려왔다.

그들은 언제나 화가 나 있다. <애피>는 두 달 동안 전국의 개농장주 10명 이상을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들에게 개는 어떤 의미인지, 무엇이 이들을 외롭고 슬프고 분노하게 하는 것인지 물었다.

“식용견과 반려견은 다른 종”

20년 전 그는 “작지만 잘 나가던” 건설업체 사장이었다. 충청도 지역에서 주택이나 상가를 지으면서 돈을 꽤 벌었는데, 아이엠에프 이후 그의 작은 회사가 휘청거렸다. 1998년 봄 이미 계약해두었던 8건 중 4건이 취소됐다. 전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개고기를 입에 댄 시기도 그 무렵이다. 어릴 때 개가 없으면 울던 그가, 스무살 때 달마티안이나 그레이하운드같이 “덩치 있고 걸음걸이가 멋진” 개를 키우던 그가, 돈을 벌기 위해 개를 키우기로 했다. 그에게 식용견은 반려견과 전혀 다른 종이다.

“개고기를 먹어보니 그렇게 좋더라고. 속이 따뜻해지고 잠도 잘 자. 먹는 개랑 애완견은 달라요. 썰매 끄는 말라뮤트는 몸에 지방이 많아 못 먹어. 육질이 좋은 도사견이나 진돗개를 먹지. 돼지도 햄프셔같이 (식용으로) 개량한 돼지 있잖아.”

도축장에 갈 때 동물도 슬픔을 느끼지 않냐는 질문에 “(초식인) 소는 피비린내가 나면 죽을 때를 알지만 개는 몰라요. 어차피 피 냄새 맡고 사는 육식동물이라 도축장 가도 씩씩합니다”라고 일축했다.

그렇게 식용견 농장을 시작한 그에게 개는 전 재산이었다. 100여마리를 키우던 개농장을 1000만원 넘게 주고 통째로 사들였다. 그 개들이 새끼를 낳고 또 그 새끼가 새끼를 낳으면 돈이 될 생각에 그는 기뻤다고 했다. 1~2년이 지나고 번식이 시작되자 개들은 그에게 월 1000만원씩을 벌어다 주었다.

그때가 60근(42㎏)짜리 개 한 마리 고깃값으로 42만원(한근 7000원)을 받을 때였다. 500마리의 개를 팔아 한해 1억2000만원까지도 벌었다. “인물 있는” 종견(수컷)은 300~400만원까지 받았고 보통 개도 80~90만원씩을 받고 팔았다. 사람만큼 무거운 개를 안고 끌면서 허리를 다쳐 디스크 수술을 받았지만, 이 일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애 둘을 대학까지 보냈다.

개가 알아서 돈을 벌어준다지만 돈이 돈을 버는 건 도시나 시골의 개농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2013년에 1000평이 넘는 대지를 사서 농장을 넓혔다. 1000마리의 개가 살 뜬장 설치에만 5000만원 이상이 들었다. 보통 개에게는 음식물쓰레기를 먹이지만, 강아지와 산모에게 먹일 영양분인 닭 머리를 따로 사야 하고 병에 걸리지 않도록 맞춰야 하는 종합백신세트을 사면 한해 2000만원씩은 지출한다. 한창 바쁜 5월부터 8월까지는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해야 일을 다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개 값이 20년 전보다 1/3(한근 2000~2500원)로 떨어지자 번식은 해봤자 밥값만 계속 들어가 손해를 보게 됐다.

“지금은 한해 5000만원도 못 벌어요. 예전에는 이걸로 애들 교육 다 했는데 개값이 똥값이 됐으니 이제 학자금 대출받아야 하는 거죠. 작은 애가 제대 후 복학하는데 농장을 팔아야 뭐가 되려나.”

“노후대책으로 시작한 일, 포기 어려워”

그처럼 대부분의 식용견 농장주는 생계의 어려움을 직접 호소한다. 지난 7월6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대규모 개고기 찬성 집회 때에도 육견인 단체들은 농민의 생존권 보장을 동물복지에 대응하는 구호로 내걸었다.

이날 만난 김아무개(59)씨는 경기도 안성에서 300~400마리를 키운다. 김씨는 “서울에서 직장 다니다 퇴직하고 노후대책도 없어서 (개농장을) 시작했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렵고 못 배우고 빽없는 사람들이 살다 살다가 (시골) 와서 그나마 몸부림치는 것이 이것”이라고 말했다. 60대 전후의 고령 농장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어려웠다고 입을 모았다. 소나 돼지보다 초기 투자금이 적게 드는 개를 키우는 일에 도전하고, 이제는 그 일을 지키는 일이 중요해 보였다.

누구나 삶이 부정당하는 경험은 자존감을 아래로 떨어뜨린다. 대부분의 농장주는 억울하고 화가 난다고 했다.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언론, 마을 주민의 ‘민원’과 비협조적인 ‘공무원’, 농장 운영 관련해 강화된 귀찮은 환경 관련 ‘법’과 동물단체와의 갈등 등으로 지쳤다는 것이다.

한겨레

지난 7월 식용견을 기르는 농장주를 비롯한 개고기 산업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에 모여 개고기 합법화 집회를 열었다. 임세연 객원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두고 사회가 “범죄집단, 쓰레기 취급”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정부가 동물단체가 (농장주들에게 가하는) 채찍질만 (허락)하고 있는” 요즘, 개고기 합법화는커녕 동물단체의 요구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주지 못할 거면 차라리 지금까지 그랬듯 법의 사각지대에 내버려둘 것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가 말했다.

“개에 대해서는 시비 거는 이들이 많아요. 정부가 이런 걸 못 하게 해야지. 학계에서 (개고기에 대해) 연구해서 자료화하고 (개고기를 먹도록) 국민을 교육하는 게 나라지. 지금은 동물단체가 정치를 하고 나라를 운영하고 있어요. ”

그들은 “쉬었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먹고 남은 짬밥을 모아뒀다가 개에게 주던” 시대를 살았다. 하지만 동물단체는 음식물쓰레기를 개의 밥으로 먹이는 것에 대해 학대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가 부정당하는 것이 불쾌하다. “가만히 두면 소비자가 줄어 자연스럽게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서글픈데, 동물단체는 앞장서서 그들을 “벼랑 끝에” 내몰고 있다. 현실이 잔혹하게 느껴진다. “바닥에서부터 시작해 몸으로 열심히 먹고살던” 그들이 볼 때는 회원들의 회비를 모아 활동하는 동물단체가 오히려 더 건강하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이 반려견이나 키우고 그러면 안 돼. (식용으로) 개를 키우는 사람도 국민이고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도 국민이지. 개 식용 종식하려면 정부 태도부터 바꿔야 해. ”

그는 전업하고 싶지만, 돈이 문제라고 했다. 여러 명의 농장주가 정부가 지원하면 당연히 전업한다고 했다. 동시에 일자리를 늘린다는 정부가 “수천 명의 개농장주의 직장을 폐쇄”하는 게 말이 되냐는 원성도 이어졌다. 그들은 개농장에 들인 돈과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보장이 없으면 물러설 수가 없다.

“특별법 제정하면 전업 의사”

지난달 29일 개농장 운영을 주업으로 삼는 육견인 500여명의 모임인 전국육견인연합회 임원진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실을 찾았다. 그들은 만약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개 사육 중단 정책을 추진한다면, 구체적인 내용을 협의할 수 있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환로 전국육견인연합회 사무총장은 “지원금을 요청하러 간 것이 아니라 개농장 전업과 관련한 특별법 제정을 건의하러 갔다. 특별법을 통해 타 축종으로 전환을 지원한다면 이를 따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소농(개를 적게 기르는 농가)이나 부업농(식용견 사육을 부업으로 하는 농민)이 전업과 폐업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준다면 2~3년 안에 식용견 농가의 절반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단체인 대한육견협회는 전업을 반대하며 개식용 종식에 반대하고 있다. (3회 ‘개농장주’ 하편이 이어집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임세연 객원기자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