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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노사간 힘의 불균형, 물가 부진 부른다" 래리 서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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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다보스에서 서머스 전 장관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실업률이 하락하면 물가가 오르는 함수관계가 미국에서 작동하는 않는 이면에는 노사간 힘의 균형이 무너진 미국 경제의 현실이 있다는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진단이 나왔다. 노사가 함께 거둬들인 과실 가운데 사측이 가져가는 몫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임금 상승률은 둔화되고, 물가도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서머스 교수는 학계와 민주당 정부의 경제 부처를 오간 현실 참여형 경제학자로,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다. 이어 하버드대학 총장을 거쳐 오바마 행정부에서 다시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을 담당했다. 노벨상 다음으로 가장 명망이 높은 상으로 평가받는 '존베이츠 클락'을 불혹의 나이에 받았으며, 28세에 하버드 석좌교수가된 유명 경제학자다.

서머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어느 때보다 노동조합을 필요로 한다(America needs its labour unions more than ever)’는 제목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최근 기고문에서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이 고장 난 것 같다’며 이 같은 진단을 내놓았다. 서머스 교수는 미국의 노동절을 맞아 기고한 이 글에서 "필립스 곡선 이론에 따르면 타이트한 노동시장은 임금 상승을 부르게 돼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최근 필립스 곡선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필립스 곡선은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른바 ‘역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그래프다. 실업률이 하락하면 물가상승률이 높아지고, 실업률이 상승하면 물가 상승률은 떨어진다는 게 골자다. 고용사정이 호전되면 통상적으로 씀씀이가 늘고, 소비가 증가하면 물가도 오르기 때문이다. 이 이론을 첫 발표한 영국의 경제학자인 필립스(Phillips, A. W.)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러한 상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은 7월 4.3%에 이어 8월 4.4%로 4% 초반을 유지했다. 두자릿수에 가까운 유럽국가들의 실업률에 비하면 완전 고용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미국의 지난 7월 소비자물가는 한 달 전에 비해 0.1%(계절 조정치)오르는 데 그쳤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이로써 작년 7월 이후 1년간 1.7% 상승했다. 연준의 목표치인 2%를 하회하는 것이다. 실업률이 완전고용에 가까운 4%대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물가가 목표치를 밑도는 '이상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서머스가 관심을 끈 데는 이 기고문이 요즘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실업률과 물가간 함수관계를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양자가 괴리된 원인으로 노동조합의 조직율 하락을 꼽고 있어서다. 미 연준 이사들은 물론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이 속속 뛰어드는 이 논쟁에 민주당 정부와 하버드대 등 학계를 오간 명망높은 학자가 드디어 가세한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그동안 실업률과 물가가 따로 노는 현상에 대해 ▲미국 근로자들의 생산성 저하 ▲가격 전쟁을 뜻하는 ‘아마존 효과’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등을 꼽아왔다. 아마존을 비롯해 첨단 기술로 무장한 유통 부문 기업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끊임없이 혁신하며 월마트 등 대형 업체들의 가격 결정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근로자들이 단위 시간당 만들어내는 제품이나 서비스 수량의 증가 속도가 느려지며 물가 상승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이들은 지적해왔다.

미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가 대거 은퇴하며 공석이 된 정규직 자리에 취업한 대졸자들이 은퇴자들에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것도 물가를 짓누르는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갓 취업한 이들이 미국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을 깎아 먹고 있다는 뜻이다.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도 이달 초 한 연설에서 가격 파괴를 부르는 '신기술'을 물가 상승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는 배경으로 꼽은 바 있다. 에번스 총재는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면서 “경쟁은 기대하지 않은 영역에서도 등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러한 조류는 한동안 마진 감소와 가격 하방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머스 교수의 기고문은 노사간 힘의 불균형에서 저물가의 원인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그는 “노조 운동은 최근 민간분야의 노조 가입률이 6.4%에 그칠 정도로 퇴조했다. 1970년대 말에 비해 거의 3분의 2 정도가 줄어든 것”이라며 “노조 운동의 위축이 전반적인 노동자의 상대적 지위를 약화시켰다. 특히 육체노동자의 지위를 낮추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서머스 교수는 불과 28세의 나이에 하버드 대학의 석좌교수에 올랐으며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를 거쳐 빌 클린턴 정부의 재무부장관, 오바마 행정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자문을 담당한 폴 새무얼슨, 케네스 애로우를 삼촌으로 둔 경제학자 가문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의 부모도 예일대 등유명대학 경제학과에서 교편을 잡은 학자 출신들이다. 서머스 교수의 이러한 진단을 가볍게 흘려버릴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무너진 노동조합을 임금인상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지목한 서머스 비판론도 고개를 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을 비롯해 월스트리트 출신들을 앞세워 금융세계화의 고속도로를 깔며 신자유주의 개혁을 주도한 클린턴 행정부의 원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연준에서는 올해 중 기준금리 추가인상 신중론도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는 지난 5일 뉴욕 이코노믹클럽 연설에서 “(목표치를 밑도는) 물가상승률이 더 지속될 수 있다(more persistent) ”면서 “이 경우 기준금리를 더 점진적으로 올리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연준은 작년 12월 기준금리를 올린데 이어 올해 3월, 6월에 금리를 인상했다. 또 올해 중 금리를 한차례 더 올리고, 이어 내년에도 3차례 금리를 높인다는 방침이지만, 일부 이사들을 중심으로 신중한 기류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yungh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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