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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마구 상스러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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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거칠고 자유로운 ‘프랑스 쌍년’

우리 그녀와 유혹자의 서클이 만들어지는 순간


한겨레21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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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바닷가에서 아이들 친구, 그리고 그 부모들과 긴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모임이 즐거웠던 건 누구보다 매력적인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상대는 프랑스 니스 태생의 모델. 자신을 쏙 빼닮은 아름다운 딸아이를 둔 이혼녀다. 사진작가인 남자친구와 그의 아들도 함께 왔다.

그들은 동거 대신 이웃에 살기를 택했다. 생활의 많은 부분을 함께하지만, 그들만의 거리감은 그들만의 고유한 거리이다. 그녀가 가장 믿지 않는 말은 ‘남자가 사랑한다면’으로 시작되는 정언들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드라마와 영화, 잡지에서 떠들어대는 ‘남자는 사랑하면 이렇게 행동한다’는 공식에 맞춰 남자의 사랑을 가늠하고 해석하고 그에 맞춰 우리의 사랑을 끼워맞춰왔다. 거기에 여자의 능동성이란 관계의 결정적 요소가 아니다. 자신을 결정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 섣불리 감정을 소비하지 말라는 조언은 사실 여자를 너무나 전형적인 사랑과 연애의 틀 안으로 몰아넣는 말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특별함

그에 따르면, 사랑에 빠진 수컷은 자신의 일을 제쳐놓고라도 당신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디서든 달려와야 하고, 사랑에 빠진 수컷은 독점욕과 소유욕과 넘치는 정념으로 당신을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깨달은 것이 있다. 절실한 감정과 행동의 과격함이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는 더 조심스럽고 더 서성이며 더 배려하다 움직일 기회를 놓친다는 것. 쉽게 움직이고 강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습관의 문제라는 것. 그러므로 미리 해석하고 짐작하기보다 궁금한 사람이 다가가고 묻고 제안하는 편이 좋다고. 세상의 넘쳐나는 조언 따위 때로 무시하는 편이 낫다고. 프랑스 여자와 나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마음을 두고 수백 가지 해석을 내놓는 여자에게 말해주곤 해. 가서 물으라고. 해석할 시간에 다가가서 묻고 그 결과에 담백하게 반응하라고. 대부분의 해석은 말이야 모조리 맞지 않아. 왜냐면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약간의 단서만으로 파악할 수 없거든. 차라리 그 시간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해서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더 좋아.”

그녀는 180cm 가까운 키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 모습이 인상적이다. 예쁜 여자야 많지만 그녀의 특별함은 다듬어지지 않은 데 있다. 그녀의 크고 못생긴 발처럼. 거칠고 투박하지만 당당하게 드러난 발을 보며 깨달았다. 잘 관리된 발 같은 미국 미인들에게 느끼던 답답함과 지루함의 이유를. 뜨겁고 화창한 날씨를 자랑하는 이곳에서 잘 다듬어진 발은 꽤나 상징적이다. 하지만 나의 프랑스인 친구는 발 관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맨발로 여기저기 잘 걸어다닌다. 손톱도 마찬가지로 아무렇게나 기르다가 싹둑 동강 내버린다.

아름다움이 매혹으로 가기까지 필요한 건 서사다.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들려주지 않는 아름다움은 지루하다.

‘아이도 엄마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해’

“나는 벌거벗은 엄마와 이모들에 둘러싸여 자랐어. 해변을 나가기만 해도 젊고 늙고 뚱뚱하고 마르고 작고 크고 피부가 늘어지고 탄탄한 온갖 사람들의 나체를 볼 수 있었지. 늙어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그 과정을 보는 것에 익숙해졌어. 덕분에 늙는 게 두렵지 않아. 사람들은 날씬하거나 탄탄한 근육을 가지면 더 행복해질 거라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에게 자연스러워지는 일이 수반되지 않는 한.”

그녀는 평소 화장을 하지 않는다. 짧은 곱슬머리는 종종 흐트러져 있다. 이제 막 마흔이 된 얼굴에는 적당히 보기 좋게 주름이 자리잡았다. 멋진 지도처럼 길을 품어안을 얼굴이다. 그녀의 행동은 거칠고 과감하고 쌍년스럽다. 이를테면 프랑스적으로 쌍년스럽다. 수많은 남자친구를 사귄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종종 바람을 피운 사실도 인정한다. 이른 아침마다 아이를 위해 분주히 음식을 만들고 매끼 다른 메뉴의 도시락을 싸주는 열성 엄마이고 끽연가다. 대화 도중 담배를 피우러 자리를 비울 때마다 말했다. “잠시 프랑스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올게.”

딸이 있는 자리에서도 남자친구와의 스킨십은 자연스러웠다. 딸을 향한 사랑은 명백히 표현하나 자신의 삶을 모성이라는 명분 아래 제한하지 않는다. 아이 역시 엄마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둘째딸의 친구이기도 한 그녀의 딸은, 엄마를 한 여성이자 직업인으로 당연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녀는 열여섯 살에 유명 에이전시 모델로 발탁돼 각종 잡지의 표지모델을 거쳤다. 미국 뉴욕을 무대로 활동했고 이른 나이에 돈과 명예와 세상의 주목을 얻었다. 그러나 잦은 여행과 바쁜 스케줄의 틈, 혼자 남겨지는 시간은 그물 구멍처럼 많았다. 크리스마스이브, 새해 첫날에 때로는 홀로 호텔방에서 시간을 보내면 구토 같은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주체할 수 없이 마약과 술에 빠져들었고 폭식과 섭식장애 사이를 널뛰듯 오가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살아남았다. 생존자로 살아남아 자신을 치유한 사람은 타인을 치유하는 길을 걷기도 한다. 그녀는 많은 강연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비슷한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이다.

프랑스 쌍년은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 자신의 경계를 침범하면 발칵 대들 자세가 돼 있다. 그러나 예의를 명목으로 호기심을 가두는 일은 없다. 묻는 일은 관심을 표하는 방법이다. 듣고 싶은 이야기는 들려달라고 말한다. 그녀는 나의 삶과 가족, 내가 거쳤던 나라들을 궁금해한다. 내 이야기가 그녀의 이야기와 대화 속에서 만난다.

전형적 아시아 여자로 살지 않기 위해

나 역시 한때 그녀의 나라에 살면서 프랑스적 쌍년스러움을 한국적 쌍년스러움에 보탰고, 덕분에 매우 쌍년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남동생을 둔 차녀로 자라면서 장녀와 남동생에게 모든 기회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충분히 교활하고 전투적이 돼야 했다. 남학생이 대부분인 대학 시절 어떤 행동을 하든 귀여운 여자애로 해석되는 부당함에 맞서 더 크고 당당하게 말하는 법을 익혔다. 프랑스에서는 전형적 아시아 여자로 살지 않기 위해 쌍년스러움을 전투적으로 사용했다. 조용히 미소짓고,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의사 표현은 조심스럽고, 권력에 순종적인 아시아 여자는 그들의 환상에 불과했음을 나서서 드러내야 했다.

하지만 미국의 가족적 삶을 택하면서, 선량하고 건전한 미국 중산층의 도덕에 맞춰 전투력은 낮추고 밝고 건전하고 교양 있고 배려심 많은 사람으로 살았다. 나의 쌍년들을 골방에 가둬놓고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삶을 최고의 가치인 양 말이다. 이런,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니 내 안의 그년들이 좋아 날뛰는 것이 느껴진다. 마구 상스러워지고 싶은 순간, 끝난 줄 알았던 생리가 다시 터진다. 이 느낌을 잘 알고 있다. 무언가 아주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할 때 찾아오는 발작 같은 감각. 무언가 터져야만 길을 트는. 어느 때는 속옷이 풀어지기도 하고 아주 가끔 피가 흐른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맨발로 걸으며 다리 사이로 흐르는 피를 그대로 내보내 핏자국을 찍으며 나아가고 싶다. 이렇게 저 바닷가를 걸었으면. 이왕이면 아름다움은 과한 게 좋다. 넘칠 듯 넘쳐서 마구 낭비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어야 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지폐뭉치를 날리듯 다 써버리고 싶은. 아름다움은 어긋남이 필요하고 기괴함에 맞닿아야 한다.

그녀는 삶의 유혹자다. 특정 대상을 목표로 삼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매혹적이다. 살아 있고, 그러므로 끊임없이 배반한다. 전형성과 파격성이 어우러져 있다. 이런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은 지나온 삶의 총합과 지금을 살아가는 자세다. 그녀는 자기 삶의 기반을 프랑스 남부 해안의 자유롭고 생기 가득했던 시절에서 찾아낸다. 젊고 늙고 크고 작고 탱탱하고 늘어진 것들이 흐드러진 꽃처럼 피어 있던 곳. 그녀는 아름다워서 자신의 몸에 자유로운 것이 아니었다. 자유로워서 아름다웠다. 자신을 인정하고 타인과 세상을 끌어안는 자의 시선은 주변을 매혹의 자장으로 밀어넣는다.

나는 그녀와 더불어 더없이 매력적인 사람이 된 기분이다. 유혹자의 서클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나는 더 이상 기지를 지키듯 삶을 지킬 마음을 잃는다. 사랑의 예비군으로, 삶의 예비군으로 의심쩍은 무언가가 우리를 휘몰아치고 지나갈까 가슴 졸이면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키는 자의 삶은 기다리는 삶과 같다. 태풍을 기다리듯, 원하지도 원하지 않는 것도 아니면서, 살짝 적시고 지나가는 소나기라면 나쁘지는 않을 텐데, 라고 중얼거리면서. 한편으로는 습기가 몰고 올 한기나 끈적임을 상기하며 내게 닥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어차피 다 끝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성숙함이라고 위로하며, 허무함을 시간으로부터 배운 최고의 교훈인 양 으스대며. 그러나 언젠가 죽을 줄 알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삶이고 언젠가 시들지라도 꽃을 피우는 것이 생명 아닌가. ‘그리스인 조르바’의 지혜를 떠올린다.

익숙하지만 새롭고 낯설지만 가까운

“죽으면 말썽이 없지. 산다는 것은….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06)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여전히 남았다. 각자 아는 이 도시의 특별한 공간을 안내해주기로 한다. 나는 그녀에게 새로운 세계이고 그녀 역시 내게 그러하다. 그럼에도 어딘가 맞닿아 있음을 감지한다. 익숙하지만 새롭고 낯설지만 가깝다. 학교에서 여러 번 마주쳤어도 가까워질 기회는 갖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알게 돼 기쁘다는 인사를 나눈다.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엄마들이 인생을 즐겁게 누릴 때 비로소 찾아진다고, 그녀는 덧붙인다.

그녀와 헤어진 뒤 밤늦도록 그녀를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아름다움을 생각한다. 그녀는 아름다움의 제공자이자 배경이 된다. 내게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매혹을 제대로 누리려면 더 많은 안내자가 필요하다. 어두운 밤길을 안내하는 반짝이는 하얀 조약돌처럼.

이서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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