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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스러지고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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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그린 장편만화 <풀>의 김금숙 만화가

한겨레21

Francois Ramp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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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을 피해자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진 평화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로 그리고 싶었다. 이것은 제가 일부러 의도해서가 아닌 이옥선 할머니 현재의 삶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책 <풀>은 인간이 엄청난 일을 겪고 난 후 그로인해 갖는 트라우마를 어떻게 안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금숙(46) 만화가가 8월14일 ‘세계 위안부의 날’에 장편만화 <풀>(보리출판사 펴냄)을 펴냈다. <풀>은 중국으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고 5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이옥선(90) 할머니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국내 출간에 앞서 프랑스 델쿠르 출판사에 판권을 수출해 프랑스어판도 나올 예정이다.

김금숙 작가는 2014년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위안부 문제를 알리려고 개최한 전시회 ‘지지 않는 꽃’을 통해 단편만화 <비밀>을 발표한 적 있다. 그 뒤에도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그리겠다고 생각해 <풀>을 기획했다.

프랑스에서 조각가이자 만화가로 20년 가까이 활동해온 김 작가는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화와 그림책에 담고 있다. 그동안 도시 이주민들의 아픔을 그린 자전적 이야기 <아버지의 노래>, 제주 4·3사건을 그린 <지슬>, 원자폭탄 피해자를 다룬 그림책 <할아버지와 보낸 하루> 등을 출간했다. 지난 8월15일 3년간의 <풀> 작업을 마치고 프랑스에 있는 김금숙 작가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침묵하는 검은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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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풀’에 담긴 의미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어린 시절 사회적 배경을 보면 대부분 가난한 서민의 자식이고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약자 중 약자였다. 그분들 모습에서 바람에 스러지고 밟혀도 다시 일어서는 풀이 떠올랐다. 끝까지 살아나는 강인함도 느꼈다. 이옥선 할머니는 “태어나서 행복한 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강한 의지로 삶을 살아오셨다. 늦은 나이에 야학에 다니며 글을 깨우치고 장사도 하셨고 오랜기간 여성들의 출산을 돕는 일을 하셨다.

단편만화 <비밀> 이후 위안부 피해자를 그린 두 번째 작품이다.

<비밀>이 <풀> 작업을 하게 된 계기다. <비밀>은 작업 기간이 2∼3개월로 짧았다. 시간이 없어 할머니들을 만나지 못하고 공부도 제대로 못한 채 증언을 읽고 (만화를) 그렸다. 내내 작가적 양심에 걸렸다.

이옥선 할머니와의 첫 만남은.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 처음 갔을 때 할머니들 보시라고 내 어린 시절 모습을 담은 그림책 <꼬깽이>를 두고 왔다. 그 뒤 다시 찾아갔는데 이옥선 할머니가 책을 읽고 계셨다. 할머니는 책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고 하셨다. 그게 인연이 됐다. 하지만 과거의 상처를 헤집는 일인 인터뷰가 쉽지 않았다. “아베가 사죄해야지” “아베가 배상해야 해” 똑같은 말만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할머니에 대한 모든 오브제(물건)가 있는 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둘만의 내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작업 기간이 3년 걸렸다.

단행본 중 가장 오래 걸렸다. ‘위안부 피해자’라는 주제가 민감하고 조심스러웠다. 그동안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이 주제를 다뤘다. 어떻게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할까 고민이 많았다.

폭력적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일본군에게 겁탈당하는 장면은 검은 컷으로 그렸다.

가해자에 대한 미움을 극대화하기보다 할머니의 감정과 심리 상태를 이미지로 보여주려 했다. 그래서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침묵하는 검은 페이지로 했다. 폭력적인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건 또다시 할머니에게 폭력이 된다고 생각했다. 여성의 시각에서, 약자의 시각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할머니의 마음을 자연의 이미지로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풀, 나무, 산 등을 그리며 독자가 당시 할머니의 마음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사회적 냉대를 받은 할머니와 가족”

500쪽에 이르는 장편만화에 해방 이후 할머니의 일생을 내밀하게 담았다.

우리는 해방 이후 할머니들의 삶을 잘 모른다. 위안소에서 강제로 그 일을 당한 것은 많이 알고 있다. 할머니들은 해방 뒤 고향에 돌아갈 수 없거나 고향에 돌아와도 주위 사람들과 가족의 냉대를 받으며 사셨다. 김학순 할머니가 세상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알리기 전 얼마나 숨죽이며 고통스럽게 살아왔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고국에 돌아온 뒤 가족과 갈등을 겪으며 “형제끼리 의지하며 살려고 왔는데”라는 독백 같은 할머니의 말이 있다.

그들의 갈등은 위안부 피해자를 보는 한국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서 비롯됐다. 사회적 냉대를 받는 할머니들뿐 아니라 가족도 피해자다.

책의 앞뒤 표지를 펼치니 10대 때 할머니와 90살 할머니가 마주 보는 그림이 된다.

할머니는 과거의 일이 내 팔자라며 자책한다. 그건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서 일어난 일이다. 개인 잘못이 아니다. 현재가 과거를 피하지 않고 마주 보며 화해하는 이미지를 뜻한다.

책 뒷부분에 중국 ‘위안부’ 문제연구센터 윤명숙 박사가 “위안부 문제는 대일 과거 청산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나아가 지금 우리 안의 가부장적 성차별 문제이기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풀> 기획안을 출판사에 보낼 때 윤 박사의 지적처럼 여성의 시각으로 그리고 싶다고 했다.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당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존재하는 성폭력 희생 여성들의 삶과도 이어진다.

제주 4·3사건을 다룬 <지슬> 등 현대사의 아픔을 그린 작품이 많다.

나 역시 약자다. 여성이고 서민의 자식이고 주위 사람들도 그렇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마음의 서랍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고 있다.

몸으로 작품을 그리는 작가

작업 스타일은.

만화가 이두호 선생님이 ‘작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몸을 움직여야 작업이 된다. 서서 작업한다. 작품을 몸으로 그린다. 앉아서 (작업을) 하면 기가 잘리는 것 같다. (웃음)

만화의 매력은 무엇인가.

글과 그림이 함께 있어 좋다. 한 컷에도 큰 감동을 줄 수 있다. 무거운 주제를 다뤄도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사유의 힘과 삶을 풍요롭게 한다.

준비하는 작품이 있나.

나의 청년 시절 이야기를 그리려 한다. 대학 졸업하고 1994년 프랑스로 떠났다. 지금 ‘헬조선’이라 하지만 당시에도 내게 한국은 희망이 없는 곳이었다. 꿈을 펼치기 위해 프랑스에 갔다. 그때 내 모습과 현재 청년들의 이야기에 담긴 보편성을 끌어내려 한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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