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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전문가의 세계 - 이명현의 별별 천문학] (11) 개기일식, 상대성이론을 증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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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고 우주쇼 ‘개기일식’

1919년 일식 때 이뤄진 이론 검증 관측 결과 “아인슈타인이 옳았다”

경향신문

“뭐니 뭐니 해도 개기일식이죠.” 어떤 천체현상이 가장 인상적인지 물어보면 나는 언제나 같은 대답을 한다. 부분일식이나 금환일식도 나름대로 정취는 있지만 여러 면에서 개기일식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월식도 은근하고 멋진 천체현상이지만 극적인 요소를 생각하면 역시 개기일식에 미치지 못한다. 유성우나 오로라의 장관과 감동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개기일식을 지상에서 맨눈으로 관측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우주쇼라고 하겠다. 과학관이나 미술관에서 개기일식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지만 밤과 낮이 순식간에 뒤바뀌는 순간을 직접 체험하는 그 감동은 결코 재현할 수 없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달은 지구를 돌고 있다. 따라서 서로 공간상에 놓이는 위치가 그때그때 달라진다. 태양-지구-달 순으로 위치하게 되면 우리는 달의 한쪽 면을 온전히 볼 수 있다. 이때가 보름으로, 보름달을 볼 수 있다. 지구와 태양 사이에 달이 놓이게 되면 달이 태양빛을 반사하는 부분이 태양을 향하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달을 볼 수 없다. 그믐이다. 신월이라고도 한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평균적으로 1억5000만㎞ 정도 된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는 평균 38만㎞ 정도다. 지구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태양이 달보다 400배 더 멀리 떨어져 있다. 한편 태양의 크기는 달의 400배 정도 된다. 지구에서 보는 천체의 겉보기 크기는 지구로부터 천체까지의 거리와 관련이 있다. 멀면 멀수록 작게 보이기 마련이다. 거리와 겉보기 크기는 반비례한다. 대략 2배 멀어지면 겉보기에 실제 크기보다 2배 작게 보인다. 태양이 달보다 400배 정도 크지만 400배 정도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지구에서 볼 때는 태양의 겉보기 크기가 보름달과 비슷하게 보인다. 지구의 공전궤도면과 달의 공전궤도면도 거의 한 평면에 놓여 있다.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을 해보자. 태양과 달의 겉보기 크기가 거의 같은데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위치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구에서 볼 때 달이 태양을 가릴 것이다. 겉보기 크기가 거의 같으니 태양-달-지구 위치가 될 때마다 달이 태양을 가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믐 때마다 매번 발생할 것이다. 이 현상을 일식이라고 한다.

반대로 태양-지구-달 순으로 위치하면 보름달이 되는데 이때는 달이 지구의 그림자로 들어가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이런 현상을 월식이라고 한다. 보름달 때마다 월식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궤도면과 달이 지구를 도는 공전궤도면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고 약 5도 정도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그믐 때 일식이 일어나지 않고 모든 보름달 때 월식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거의 원에 가까운 타원궤도로 돌고 있다. 태양까지의 거리가 달라지면 태양의 겉보기 크기도 달라진다. 하지만 태양까지의 거리가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태양의 겉보기 크기는 거의 똑같다. 달의 경우는 좀 상황이 다르다. 지구에서 가깝고 달이 지구 주위를 타원궤도로 돌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달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울 때와 가장 멀리 있을 때의 달의 겉보기 크기의 변화는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하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공전궤도면의 차이 때문에 그믐 때마다 매번 일식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달의 겉보기 크기의 변화 때문에 일식은 몇몇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달이 충분히 가까워서 태양의 크기와 같거나 크면 태양이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일식이 일어난다. 달이 지구로부터 상대적으로 멀어져서 겉보기 크기가 작아지면 태양을 충분히 가리지 못해 마치 반지 모양처럼 보이는 금환일식이 생긴다. 지역에 따라서 개기일식과 금환일식이 동시에 관측되는 경우도 있다.

개기일식은 대략 18개월에 한 번 정도 일어난다. 한 지역에서는 약 370년마다 한 번씩 개기일식을 관측할 수 있다. 따라서 한 지역에서 개기일식을 관측한다는 것은 세대를 이어오는 전설일 수밖에 없다. 태양을 가린 달의 그림자는 빠른 속도로 지구 표면을 지나간다.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적도 부분에서 초속 465m 정도의 속도로 자전한다. 달은 같은 방향으로 초속 1㎞ 정도의 속도로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 따라서 개기일식 때 지구 표면에서 태양을 완전히 가린 달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속도는 달의 공전속도에서 지구의 자전속도를 뺀 값이 된다. 물론 지구 표면에서의 위치에 따라 이 값은 달라진다.

개기일식은 한 장소에서 최대 7분30초 이상 지속되지 못한다.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지구 표면에서의 달그림자의 폭도 최대 267㎞를 넘지 못한다. 위치에 따라 보통 수 분 정도 개기일식을 관측할 수 있다. 달 그림자의 폭도 보통은 100~160㎞ 정도가 된다. 개기일식을 보려면 한 장소에서 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기다리거나, 특정한 날 특정한 시간에 태양을 완전히 가린 달 그림자가 수 분 동안 지나가는 100㎞ 남짓한 지구 표면의 어딘가를 찾아가야만 한다.

하루라는 시간에 걸쳐서 경험할 수 있는 낮과 밤의 교차를 개기일식 때는 수 분 동안 압축해서 경험할 수 있다.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기 때문에 개기일식 때는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태양의 코로나도 볼 수 있다. 태양 때문에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내가 개기일식을 다른 모든 천문현상보다 최고로 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험하기 어렵지만 한번 경험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지상 최고의 우주쇼가 바로 개기일식인 것이다. 달은 지구로부터 아주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먼 훗날 달이 충분히 지구로부터 멀어진다면 겉보기 크기가 태양의 겉보기 크기보다 커질 수 없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구 표면에서는 개기일식을 관측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오랜 세월이 흐른 후가 될 것이다. 아마 6억년 정도 후쯤. 좀 과장하자면 이 점도 개기일식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개기일식 중 하나가 1919년 5월29일에 있었다. 최대 지속시간이 6분51초나 됐는데, 20세기에 있었던 일식 중 가장 긴 일식의 하나였다. 1915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어떤 물체가 존재하면 그 주변 시공간은 그 물체의 질량에 영향을 받아 휘어지게 된다. 질량이 더 크면 클수록 주변 시공간이 더 많이 휘어져 더 큰 곡률을 갖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증명하는 데 1919년의 개기일식은 중요한 기회를 제공했다. 태양이 떠있는 낮에는 별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개기일식 때는 태양이 완전히 가려져 마치 밤처럼 별을 볼 수 있다. 이때 태양 주변에 있는 별들의 위치를 관측한 후 태양이 없는 밤하늘에서 같은 별들을 관측해 별들의 위치를 비교해 보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할 수 있다. 개기일식 때 별들을 관측하면 태양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 질량의 영향으로 시공간이 휘어질 테고 더 멀리 있는 별빛은 휘어진 시공간을 날아와서 우리에게 관측될 것이다. 태양이 없을 때 같은 별들을 관측하면 태양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이 존재하지 않아 별빛은 다른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날아온다.

별들의 위치에 차이가 난다면 태양에 의해 시공간이 휘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태양의 질량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시공간이 얼마나 휘어질지 계산할 수 있다. 실제로 그만큼 별들의 위치가 달라졌는지를 관측하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별들의 위치에 차이가 없다면 일반상대성이론은 기각될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1919년 5월29일의 일식 관측팀이 꾸려졌다. 프랭크 왓슨 다이슨과 아서 에딩턴이 이끄는 관측팀은 아프리카 서부 해안의 프린시페섬으로 갔다. 다른 원정대는 브라질로 향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에딩턴이 이끄는 관측팀은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순간에 태양 주변 별들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천문학적으로 유의미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는 않았지만 브라질로 간 관측팀도 사진을 확보했다.

에딩턴은 개기일식 때 찍은 사진과 그 전에 태양이 없는 밤하늘에서 같은 지역을 찍어 둔 사진을 비교했다. 놀랍게도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한 만큼 별들의 위치가 차이를 보였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별 관측으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개기일식 때 찍어온 사진의 상태, 측정한 별 위치의 정확도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천문학적 사건이 1919년 개기일식과 함께 이뤄졌다. 이 관측을 통해 일반상대성이론이 뉴턴의 중력법칙을 밀어내고 중력법칙의 패러다임이 되었다.

지난 21일 미국을 횡단하는 개기일식이 있었다. 달 그림자의 최대폭이 115㎞ 정도 되고, 개기일식의 최대 지속시간이 2분40초 정도 되는 개기일식이었다. 미국의 서부에서 시작해 동부까지 이어진 일식은 21세기 들어 일반인들이 가장 보기 편한 일식으로 기록됐다. 일식은 지구 표면의 아주 좁은 지역을 통과하면서 일어난다. 달 그림자가 지나가는 지역의 대부분이 바다일 확률이 높다.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일 경우도 태반이다.

그런데 이번 개기일식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매우 좋을 정도로 미국 도시들을 횡단하면서 일어났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1919년의 개기일식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과학적 검증을 한 것으로 이름을 떨쳤다면, 2017년의 개기일식은 가장 편하게 관측할 수 있었던 개기일식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개기일식을 관측할 수 있는 기회는 2035년 9월2일에 온다. 중국에서 시작해 북한의 평양·금강산 지역을 지나 일본까지 이어지는 개기일식이다. 그다음 개기일식은 2063년 8월24일에 있는데, 함경북도 최북단에서나 간신히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통일이 되거나 남북관계가 좋아져 2035년에 북한으로 관측 을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상황이 여의치 못하더라도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 부근으로 가면 1분짜리 개기일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2035년의 지상 최고의 우주쇼를 미리 개대해 본다. 과학저술가·천문학자

▶필자 이명현

경향신문

초등학생 때부터 천문 잡지 애독자였고, 고등학교 때 유리알을 갈아서 직접 망원경을 만들었다.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캅테인 천문학연구소 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다. 외계 지성체를 탐색하는 세티(SETI)연구소 한국 책임자이기도 하다. <이명현의 별헤는 밤> <스페이스> <빅 히스토리 1> 등 다수의 저서·역서가 있다.


<이명현 과학저술가·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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