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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비너스 인 퍼 Venus in Fur` 에로틱 & 유쾌함으로 풀어낸 권력의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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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에 관한 관찰은 항상 흥미로운 주제이다. 그것에 남성과 여성 그리고 성적인 판타지와 SM포르노, 게다가 권력 주도권 싸움까지. 그래서 연극 <비너스 인 퍼>가 담아내는 이야기는 매우 광범위할 것 같다. 그러나 의외의 집중도를 보인다. 극은 액자구조의 이중극이며 시대와 공간은 그리스 신화부터, 19세기 남녀의 봉건적 계급사회를 거쳐 21세기까지 한달음에 내달린다.

▶Info

기간 2017년 8월27일까지

장소 두산아트센터

출연 이도엽, 지현준, 방진의, 이경미

시간 평일 8시 / 토요일 3시, 6시 / 일, 공휴일 3시 / 월 공연없음

공연시간 100분 / 만 15세 이상

티켓 전석 4만5000원

시티라이프

자칫 이 연극을 ‘마조히즘(Ma sochism)’을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며 극장을 찾는다면, 그건 헛수고이다. 일단 이 연극이 매력적인 것은 한눈에 들어오는 무대에 있다.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는 마치 패션쇼장의 런웨이를 연상케 한다. 객석은 그 런웨이를 중심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 시각적 거리감으로 인해 관객들은 인물 간의 심리적 거리감을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고, 밝음과 어둠의 대비는 권력의 움직임을 물리적으로 받쳐준다. 이처럼 사방이 노출된 공간에서 두 명의 배우는 빈틈없이 1인 다역을 소화해낸다. 순전히 연기력과 대본의 힘으로 유지되는 연극인 셈이다.

대본의 원천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소설가 자허마조흐의 동명소설. 작가 자허마조흐는 이 작품 <비너스 인 퍼>를 통해 작가의 이름을 딴 ‘마조히즘’이란 단어를 탄생케 한 문제적 인물이다. ‘마조히즘’은 말 그대로 육체나 정신이 성적인 학대를 받아야 쾌감과 만족을 느끼는 심리상태로 ‘SM포르노’와 혼용해 쓰이기도 하는 용어이다. 이 같은 흥미유발 만점의 <비너스 인 퍼>를 데이비드 아이브스가 각색해 2010년 최초로 무대에 올렸다. 데뷔는 오프 브로드웨이에서였다. 초연에서 단박에 관객과 평단을 사로잡은 연극은 이내 브로드웨이에 입성해 당시 ‘올해 연극 중 가장 섹시하고 가장 재미있는 극’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19세기가 배경인 원작 소설에서 돌로 된 비너스 상을 흠모하는 귀족 제베린 폰 쿠지엠스키는 미망인 반다 폰 두나예프에게 반해 청혼한다. 자유분방한 두나예프가 청혼을 거절하자 사랑의 열병을 앓는 쿠지엠스키는 노예라도 되겠다고 간청한다. 실제 쿠지엠스키는 두나예프를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노예계약서를 작성하기에 이른다. 이 <비너스 인 퍼>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 굳게 믿고 무대에 올리려는 연출가 토마스와 두나예프 역에 지원한 마지막 오디션 지원자인 배우 벤다의 이야기로 극은 시작된다.

마조히즘을 모티브로 쓰여진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새로운 연극의 여주인공을 찾는 오디션장. 오디션이 종료된 후, 난데없이 오디션을 보겠다며 비를 뚫고 벤다가 나타나지만, 토마스는 자신이 싫어하는 여배우의 모든 습성을 가진 것 같아 보이는 벤다를 보고 오디션장을 그냥 떠나려고 한다. 벤다는 토마스가 꿈적하지도 않자 비굴한 모습까지 보이며 그를 붙잡는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시작된 그들만의 오디션. 오디션이 시작되는 순간, 완벽한 여주인공의 모습으로 변하는 벤다. 그녀는 토마스에게 상대역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하고 토마스 역시 무엇에 홀린 듯 대본을 읽기 시작한다. 얼마 후, 토마스는 그녀에게 장악 당하고, 그들 사이의 힘의 균형은 소설처럼 완전히 뒤바뀐다. 두 사람의 펼치는 환상과 현실, 유혹과 파워, 사랑과 섹스 그 모든 것의 전복이 이 연극의 묘미이다.

연극 <비너스 인 퍼>는 극중 연출자가 가진 권력과, 배역을 소화하는 여배우의 권력 구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소인 오디션장에서 각자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지배하는 모습을 세련되고 코믹하지만 어두운 모습으로 그려냈다. 이 작품은 현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2인극이지만 현실 속 연출과 여배우가 연기하는 극중 대본 속의 19세기 인물 쿠셈스키와 두나예브, 그리고 신화 속의 인물 비너스를 절묘하게 뒤섞으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극의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2명만 등장하면 단조롭지 않을까?”라는 우려는 현실과 극중극의 이중구조, 작품 속 인물과 현실 속 인물의 교차로 의한 다양성으로 불식시킨다. 남성과 여성이며 동시에 연출자이며 여배우인 두 인물을 통해 권력이 어떻게 옮겨지고 변화되는지를 지켜보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다.

[글 김은정(프리랜서) 사진 비너스 인 퍼]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94호 (17.10.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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