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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Hi #리뷰]‘브이아이피’, 진득한 향기 두 스푼 더한 박훈정표 느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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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브이아이피'가 23일 개봉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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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범죄영화를 가장 잘 만드는 감독을 꼽자면 박훈정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의 각본을 썼고, ‘신세계’를 연출한 그가 이번엔 더욱 현실에 밀착한 소재를 다룬 신작 ‘브이아이피’로 돌아왔다. 여기에 한국으로 기획 귀순한 북한의 고위급 인물이 소시오패스인데다가 그 인물을 이종석이 연기하고, 장동건-김명민-박희순이 그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설정 자체만으로도 영화 팬들을 매료시킨다.

영화의 오프닝은 국정원인 박재혁(장동건 분)이 정해진 일정보다 하루 빨리 홍콩에 입국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부하 직원의 만류에도 그는 자신이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 위해 CIA 요원 폴 그레이(피터 스토메어 분)를 홀로 만나러 간다. 과연 박재혁이 처리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시작부터 이어지는 이 긴장감은 현재-과거-현재 순의 시간 배열을 통해 극적인 결말을 만든다. 중간 부분의 과거 역시 다섯 파트로 확실하게 챕터를 구분했으며, 하나의 챕터에 한 인물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해 극을 단순하면서도 깊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남한의 경찰 채이도(김명민 분)와 북한의 군인인 리대범(박희순 분) 모두 각자의 조직과 완벽하게 합이 맞는 인물은 아니지만 각각 조직에서 지녀야 할 규범적인 틀을 가졌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편에 서 있지만 연쇄살인범인 김광일(이종석 분)을 각자의 나라로 잡아가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내달린다는 점에서 동일한 인물군으로 묶을 수 있다.

전형적인 인물 채이도와 리대범 사이에서 박재혁은 독특한 인물이다. 리대범의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영화의 구조상 김광일이 한 가운데 있다면 채이도와 리대범이 좌우로 갈려 있고, 박재혁은 그 주위를 돌며 극에 변주를 일으킨다. 언제 어느 방향으로 쑥 들어와 김광일을 채갈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감이 증폭된다.

박재혁이 맡은 임무는 CIA의 요구에 따라 김광일의 죄를 덮어주려고 하는 것. 평소 일을 잘 해결하는 인물이지만 완벽하게 그를 믿기엔 불안하다. 특히 영화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마음의 동요를 느끼는 인물로서 영화에 재미를 준다. 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은 박재혁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가장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인물은 타이틀롤로도 볼 수 있는 VIP 김광일이다. 그는 한 마디로 소시오패스다. 그동안 다른 많은 작품에서 소시오패스가 등장했지만 ‘브이아이피’에서는 북한의 고위층이라는 설정으로 특별함을 부여했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최민식은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잔인한 짓을 일삼으며 ‘뜨거운’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종석의 사이코패스는 무지막지한 일을 벌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오히려 남성적인 이미지보다는 우아한 태도로 자신을 잡으려는 인물들을 ‘차갑게’ 비웃는 인물이다. 외모적으로 가장 여려 보이는 김광일에게 거칠어 보이는 세 남자들이 당하는 모습이 재미있게 다가온다.

한국일보

'브이아이피'가 23일 개봉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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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네 캐릭터를 바탕으로 박훈정 감독은 느와르라는 장르를 충실하게 보여준다. 그것도 남성을 위한 전형적인 느와르로, 청소년 관람 불가답게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채이도는 말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대고, 박재혁은 틈만 나면 욕을 지껄인다. 총을 쏠 때도 거침이 없으며 어떤 일이든 과감하게 밀어붙인다. 고민의 과정을 보여주기보다 네 명 모두 한 치의 망설임이 없이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시원함을 주기는 하지만 이와 함께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대신 상대방이 과거에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꺼내 돌려가며 쓰거나 오대훈, 최정우 등이 맞받아치는 장면은 박훈정 감독 특유의 개그 코드로서 관객을 만족시킨다.

네 배우들의 필모그래피에 가장 강한 방점을 남긴 것만은 확실하다. ‘우는 남자’ ‘마이웨이’ 등 연달아 흥행에 실패했던 장동건은 복귀작인 이번 작품으로 다시 한 번 배우의 품격을 보여줬으며, 최근 많은 영화를 찍었지만 굵직한 작품이 부족했던 김명민과 박희순 역시 강렬함을 선보였다. 영화계에서 아직 신인으로 볼 수 있는 이종석은 새로운 이미지를 얻으며 충무로의 뜨거운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에도 등장했던 박성웅, 태인호를 비롯해 유재명, 조우진, 그리고 피터 스토메어 등은 주연 배우 4명의 사이사이를 꼼꼼하게 메워준다. 특히 리대범의 상관으로 등장하는 유재명의 연기는 짧은 순간에도 빛을 발한다. 23일 개봉.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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