昌이 직접 밝힌 대선 패배 이유
①"중도층에 대한 설득 실패"
②“기득권과 귀족 이미지”
③“인터넷 홍보 부족”
“이미지와 연출의 대결에서 완패했다”
"지역공학적 접근은 사후약방문 해석일 뿐"
이 전 총재는 22일 발간한 『이회창 회고록』에서 “대통령이라는 국가 지도자의 일에 대한 열정과 판단력 그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실제로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요인은 결국 후보 개인의 유권자를 설득하는 능력과 유권자에 대한 이미지”라며 이같이 말했다.
반면 그는 선거 후 외부에서 분석한 패인에 대해서는 결과에 꿰어맞춘 ‘사후약방문’에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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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회고록』[사진 김영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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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20일 한나라당 중앙당사에서 정계 은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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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총재가 스스로 분석한 2002년 대선의 패인은 크게 3가지다.
①중도층에 대한 설득 실패=나는 대통령이라는 국가 지도자의 일에 대한 열정과 판단력 그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이를 유권자에게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유권자 중 좌ㆍ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층 이른바 중도층이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데 나는 이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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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에서 대전 유세 중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후보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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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기득권과 귀족 이미지=이미지에서도 노무현 후보 측이 내세운 귀족과 서민, 기득세력과 개혁세력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나의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오랜 기간 한나라당 총재를 지내고 대선 후보를 두 번씩이나 하면서 대세론도 나오는 등 국민들에게는 지겹도록 오래 보아온 얼굴이 되어버렸다. 말하자면 기득세력의 대표주자라는 이미지가 굳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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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선거 벽보. [중앙포토] |
③인터넷 홍보 부족=“우리가 인터넷 매체의 활용에서 뒤진 것도 주요한 패인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는 이미 인터넷 매체를 통해 후보와 그 정책을 홍보하고 지지세를 규합해 적극적인 선거참여를 촉구하는 등 인터넷의 활용이 확산되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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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후보가 정계은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울 여의도 당사를 떠나고 있다.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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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총재는 “결국 2002년 대선의 승패를 가른 것은 이런 이미지와 연출의 대결이었지 정책이나 시대정신은 핵심적인 요인은 아니었다”며 “ 이미지와 연출의 대결에서 나는 완패했고 이것은 나의 능력 부족이었다. 대선 패배는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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