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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이회창,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곡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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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2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이회창 회고록` 출간기념회에서 회고록에 담긴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 전 총재는 회고록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의 주된 책임은 박 전 대통령 자신과 옛 새누리당에 있다고 지적했다.사진=연합뉴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22일 발간한 회고록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곡절이 많았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이 전 총재는 박 전 대통령이 1997년 12월 2일 자신에게 사람을 보내 만나자고 요청을 해 양측은 비공개로 만났다고 한다.

이 전 총재는 박 전 대통령의 첫 만남에 대해 "차분하고 침착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부모님이 모두 비명에 가신 참담한 일을 겪었는데도 어두운 이미지는 전혀 없었다"고 회상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우리나라가 경제난국에 처한 것을 보고 아버님 생각에 목이 멜 때가 있다"며 "이럴 때 정치에 참여해 국가를 위해 기여하는 게 국가와 부모님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이 전 총재는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어 "이왕이면 깨끗한 정치를 내세우는 한나라당에 입당해 정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전 총재는 "한나라당의 외연을 넓히는 데 좋은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흔쾌히 응낙했다"며 "그를 정치에 입문시킨 사람은 나"라고 회고했다.

이 전 총재는 "2002년 대선 패배 이후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을 맡아 천막당사로 옮겨 당의 재기를 이루는 것을 보고 내 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에는 그가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겉으로 알려진 것 외에 그를 자세히 몰랐다"며 "한나라당 총재로 있던 시절 다른 의원들과 섞이지 않고 홀로 움직이면서도 당내 민주화나 개혁 같은 주제를 선점해 당내 입지와 존재감을 키우는 독특한 행동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대통령이 된 후 국정운영을 하는 모습을 보며 실망하고 기대도 접었다"며 박 전 대통령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를 압박한 것에 대해 "소신을 지키고자 한 것이 왜 배신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터지고 탄핵 사태까지 진전되는 상황을 보며 그의 실질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원하는 대로 대통령이 됐지만 대통령의 일에 대한 정열과 책임감, 판단력은 갖추지 못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전 총재는 "박 전 대통령이 궁지에 몰렸을 때 더 이상 대통령직에 있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해야 했다"며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 발생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위기관리능력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다만 촛불집회에 대해서는 그는 "정국의 방향을 바꾸고 국가운영을 좌우하는 돌발적인 힘을 발휘하지만 예외적이고 일시적이어야 한다"며 "집단 의사표출이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일상화되거나 정치수단으로 활용되면 헌법적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전 총재는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이 전 총재는 YS가 1993년 대법관으로 있던 자신에게 감사원장직을 제의한 사실을 언급하며 "나는 그날 그의 말을 듣고 허풍이 아니라 기성 정치인에게서는 보기 드문 이상주의자의 풍모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략) 그는 동물 같은정치적 후각을 가졌으면서도 약간의 이상주의자적 면모도 아울러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었다"며 YS에 대한 첫인상을 설명했다.

그는 감사원장으로 있을 당시 YS가 대법원장직을 두 번이나 제의했다가 번복한 것을 두고는 몹시 언짢았지만 돌이켜 보면 당시 원망이 부끄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 전 총재는 1994년 YS와의 갈등 끝에 국무총리직을 사퇴한 데 대해 "나는 때때로 그와 충돌했고 총리직을 사퇴하기까지 했으며, 여당 대표로 있을 때는 당 총재인 김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기도 했다"며 "사퇴 이후 청와대 및 민자당 측에서는 (중략) 별의별 유치한 인신공격성 발언을 일제히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중략) 그때의 비방, 비난은 전혀 근거가 없는 쓰레기 같은 모략 중상이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공개적으로 나를 배신자라고 비난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소신 때문에 대립한 것을 배신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대꾸할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사실과 다른 회고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대꾸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지만, 이것은 나의 명예에 관한 것이므로 분명히 해두려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총재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탄생한 김대중 정권이 대한민국에 과연 무슨 기여를 했나"라며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 이른바 진보정권·좌파정권이 잘못된 남북관계 설정으로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데 일조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DJ정권은 결코 성공한 정권으로 볼 수 없다"며 "반세기 만에 진보·좌파 정권을 쥐어본 국민에게 무능함과 무책임함만을 각인시켜줬다"고 평가했다. 이 전 총재는 "DJP연합은 야합이지만 선거에 이기는 신묘한 수임은 틀림없고 나는 완벽하게 패한 것"이라면서도 "선거에 이기기 위한 야합이 정권에 부담되거나 족쇄가 되고 국정 수행에 지장을 받았다면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겠냐"라고도 했다.

그는 "김대중 후보는 임기를 포기하고 내각제로 개헌할 의사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김종필 총재를 속인 셈"이라며 "국가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전 총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적시했다. 이 전 총재는 "뒤늦게 정치권에 들어온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그는 정치에 들어온 지 꽤 오래 되었는데도 그 연륜에 알맞은 기반을 잡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변방으로 돌며 전두환 전 대통령 청문회에서 보듯이 뛰어난 언변과 돌출적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정치를 해온 것으로 보았다"며 "이런 사람은 대체로 시대의 흐름이나 변화의 바람이 일어날 때 민감하게 이에 편승해 부상하는 데 능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것은 노무현 후보를 잘 모르는 제삼자의 관찰이므로 잘못 본 것일 수 있겠지만 당시 나는 '노무현 부상 현상'은 조만간 깨질 바람이라고 보았다"고 회상했다.

이 전 총재는 노무현 대선 후보가 16대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급락하자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대선 후보와 단일화한 것과 관련해 "서로 다른 두 당의 후보가 오로지 이회창을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뽑기 위해 단일화한다는 것은 선택권자인 국민의 판단 기준에 혼란을 야기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의 원칙에 반하고 정당주의 원리에서 어긋나는 것"이라며 "바야흐로 정치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막장극으로 치닫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리한 처지에 있던 노무현 후보는 건곤일척 모험수로 정 후보와의 TV토론과 여론조사라는 승부수를 던졌고 이것이 적중했다"며 "마치 돈을 잃고 있던 도박사가 모든 것을 한판 승부에 걸어 도박판을 휩쓰는 것과 같았다. 많은 국민들은 이런 모험과 승부에 열광했고 대역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술회했다. 이 전 총재는 정몽준 후보에 대해서는 "자신은 인식했는지 모르나 한때 후보교체에까지 몰린 노 후보를 되살렸을 뿐만 아니라 시대변화의 상징처럼 떠오르게 한 훌륭한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 전 총재는 이날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회고록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서툴러 보이는 게 사실"이라며 "이제 100일이 지났으니 본격 평가는 아직 이르지만, 너무 홍보하는 데만 치중해 걱정스럽다"고 평가했다.

이 전 총재는 "원전과 같은 장기적인 국가정책을 즉흥적으로 발표하고 나중에 말 바꾸는 것도 문제"라면서 "(원전 폐기를) 바로 시행할 것처럼 했다가 검토하겠다고 말을 바꿔 국민이 굉장히 불안해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정치 편향성 논란에 대해 그는 "과거 활동 경력을 가지고 찬반양론이 나오는 것 같은데 조심스럽게 평가를 해야 한다"며 "좌파 편향적인 조직의 소속원이었다고 해서 그렇게 (판결을) 하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전 총재는 정치권의 보수통합론에 대해 "합칠 때가 올 거고 합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합칠 때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아야 하고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상태가 돼야만 합치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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