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직접 민주주의가 통치 수단이 되면 위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文대통령 '직접 민주주의론'에 정치권·학계선 "오만한 발상"

야권 "헌법과 국회를 무시… '의회 패싱' 정치를 선언한 것"

학계도 "광장정치만 강조하면 민주주의 위기로 치달을 것"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촛불 집회나 댓글 같은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한 것을 두고 정치권과 학계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야권에서는 "헌법과 국회를 무시하겠다는 오만한 발상"(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이라고 했고, 학계에서는 "직접민주주의가 '통치의 수단'이 되면 포퓰리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 대통령은 대국민보고대회에서 "촛불 집회처럼 직접 촛불을 들어 정치적 표시를 하고, 댓글을 통해 직접 제안하는 등 직접민주주의를 국민이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한 국민보고대회도 원래 촛불 집회의 현장이었던 광화문에서 열릴 계획이었지만, 큰 비로 인해 장소를 청와대 경내로 옮겨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이어 "국민은 주권자로서 평소 정치를 구경만 하다가 선거 때 한표를 행사하는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며 "그 결과 우리 정치가 낙후됐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집단 지성'과 함께하겠다. 국민과 끊임없이 소통하겠다"고 했다. 여권 지지층들은 자신들을 '깨어 있는 시민'으로 부르며 댓글 등 자신들의 참여로 여론과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집단 지성'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자만하지 않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청와대 참모들도 이런 '직접민주주의' 강화에 나서고 있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실은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언론을 거치지 않은 직접 소통 수단을 대폭 강화했다. 정보의 독점권을 가진 청와대가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뉴스, 동영상을 배포하며 정보의 유통까지 직접 나서고 있는 셈이다. 노무현 정부가 직접 인터넷 뉴스 사이트를 운영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이를 업그레이드해 청와대와 국정(國政)을 소개한 포털 사이트 하나를 운영하는 수준이다. 이런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네이버, 정혜승 뉴미디어비서관은 다음카카오 등 관련 분야에서 활동했었다.

신고리 5, 6호기 공사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공론화위원회도 국회를 거치지 않는 대표적 '직접민주주의' 방식이다. 대(對)국회 업무를 담당하는 전병헌 정무수석도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국가적 갈등 과제가 국회로 가서 정쟁으로 변질된 경우가 많다"며 "국민의 직접 참여를 통해 '집단 지성'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에 역행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정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등 핵심 정책을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인 국회 입법 없이 대통령의 업무지시를 통해 바로 결정했다.

야권은 대통령의 '직접민주주의론'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간접민주주의로 정치가 낙후됐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대의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과 정당정치의 기본을 흔드는 '의회 패싱(passing)' 정치를 선언한 것"이라고 했다. 김유정 국민의당 대변인은 "대의제를 무시한 채 국민과의 직접 소통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박정하 수석대변인도 "직접민주주의가 도를 넘게 되면 자칫 광장정치, 여론조사 정치,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도 직접민주주의 '만능론'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여당 의원은 "국회를 통해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대의제의 핵심인데, 대통령이 '직접민주주의'로 국회의 통제를 벗어나면 권력의 남용으로 이어진다"며 "국회 약화는 집권 여당의 존재감 상실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실제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기반으로 대통령과 청와대에 힘이 집중되면서, 집권당인 민주당의 존재감이 미미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여권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의회에 대한 국민적 불신 때문에 '직접민주주의'가 부각되는 측면이 있지만 권력이 '광장정치'만 강조한다면 민주주의의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우상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