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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books 레터] 하루에 두 번 머리를 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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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어수웅 Books팀장


마루야마 겐지를 만나기 전부터 궁금했습니다. 특유의 헤어스타일. 얇은 사(絲) 하이얀 고깔도 없는데, 완벽하게 파르라니 깎은 머리잖아요.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메밀 국수(자루소바)를 사겠다더군요. 머리에도 핏줄과 힘줄이 도드라진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유전자의 형벌이냐, 스스로의 결단이냐. 후자더군요. 나이 50이 되었을 때 또 한 번 대오각성(大悟覺醒)했답니다. 이렇게 느슨하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그때 처음 머리를 깎았다죠. 그날 이후 하루 두 번씩 머리 면도를 한답니다. 새벽 글쓰기가 끝나고 나서 한 번, 저녁 목욕할 때 한 번. 이날 차림은 블랙 진·블랙 라운드 티셔츠에 카우보이 버클이더군요. 70대 중반의 근육질 작가가 웃으며 덧붙이는 말. "대중목욕탕과 전철에서 유리해. 야쿠자인 줄 알고 알아서 멀어져준다니까."

한국에 잘 알려진 그의 산문집 제목으로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가 있습니다. 낭만과 환상을 갖고 귀향·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일갈이죠. '한적한' '아름다운' 등의 형용사로 시골을 떠올리는 도시인들에게 당신의 단어를 말해달라 청했습니다. 50년 산골 거주 작가의 어휘는 싸늘하더군요. 음습(陰濕), 무지(無知), 교활(狡猾), 눈앞의 욕망(目先の欲望)…. 덧붙인 말은 이렇습니다. 값싼 꿈 꾸지 마라. 소년소녀의 꿈으로 시골에 이주하는 인간치고 제대로 사는 사람 없다. 도시가 지옥이라면 시골도 지옥이다. 도시는 그래도 도망칠 구멍이라도 있지, 여기는 그나마도 없다.

한국에도 열혈 독자가 많으니 한 번 방문할 생각 없느냐고 초청했지만, 단칼에 고개를 젓더군요. 찾아오는 사람 마다하지는 않겠지만, 도쿄든 서울이든 뉴욕이든 먼저 찾아갈 생각은 없다면서요. 하루 쉬면 하루 분량만큼 실력이 퇴보한다는 그의 인터뷰가 다시 떠오르네요. 그는 '소설가의 각오'를 말했지만, 당연히 소설가에게만 해당되는 각오는 아닐 겁니다.







[어수웅 Books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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