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외 온도 차 크면 탈진 상태로
두통·오한·변비·설사 … 온갖 증세
고열, 가래 … 레지오넬라증 우려
치료 안 하면 폐렴·신부전 될 수도
선우성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냉방병을 잘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냉방병은 위장·호흡기·눈·피부 등 거의 모든 신체기관에 이상증상을 유발해 증상이 다양하다”고 말했다.
입추(7일)가 지났지만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냉방병은 더운 날씨에 에어컨·선풍기 등 냉방기기를 과하게 쓰거나 잘못 사용하면 생긴다.
냉방병은 공식적인 질병명은 아니다. 에어컨을 많이 쐰 사람이 이유 없이 피로감·두통·위장질환 등의 증상을 호소할 때 흔히 냉방병이라고 한다.
냉방병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로 실내외 온도 차가 너무 크면 자율신경계가 적응에 지쳐 냉방병에 걸린다. 조비룡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우리 몸은 주변 기온이 높아지면 1~2주에 걸쳐 더위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실내외 온도 차가 크면 자율신경계가 이에 적응하느라 일종의 탈진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이때 두통·오한·피로감 등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나 변비·설사 등 소화기질환이 생긴다.
이런 증상은 여성에게 더 잘 나타난다. 지방층이 남성보다 두꺼워 온도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다. 직장인 이모(29·여·서울 마포구)씨는 갑작스러운 두통·코막힘·기침 때문에 병원에서 감기약을 처방받았다. 하지만 약을 1주일 동안 먹어도 낫지 않았다. 이씨는 “사무실에서 에어컨 바로 앞에 앉아 있는데 어느 날 머리가 너무 아프고 목이 간지럽고 코가 막혀 일에 집중이 안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사무실에서 긴팔 옷을 입고 나서 증상이 조금씩 나아졌다.
자율신경계는 체온뿐 아니라 심장박동, 소화관 운동, 소화액 분비를 조절한다. 조비룡 교수는 “자율신경계가 체온 조절에 많은 에너지를 쓰면 다른 곳에 에너지를 쏟을 여력이 부족해져 이상증상이 생긴다”고 말했다. 손발이 붓거나 팔다리·허리·무릎 관절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심한 경우 여성 호르몬 균형이 깨져 생리 불순이 온다. 고령자는 안면신경 마비 같은 근육 마비 증세가 올 수 있다. 선우성 교수는 “심혈관질환자와 당뇨·관절염 등 만성질환자는 기존 질병이 심해지기 쉽다”고 말했다.
둘째로 냉방을 유지하느라 환기를 잘 안 하면 냉방병 증상이 생긴다. 밀폐된 실내에서 에어컨을 한 시간 연속으로 가동하면 습도가 30~40%로 떨어진다. 여름철 적정 실내 습도는 60%다. 습도가 낮아지면 코·입 등 호흡기 점막이 마르고 세균·먼지를 떨어내는 콧속 섬모 운동이 둔해진다. 이렇게 되면 실내 먼지뿐 아니라 복사기·카펫·가구 등에서 방출되는 화학물질에 오염된 공기를 마셔도 이를 방어할 수단이 없어진다. 탁한 공기에 노출되면 눈·코·목이 따갑고 아프며 피로감·두통이 나타나기 쉽다.
지난해 질병본부가 병원·숙박업소 등 다중이용시설 냉각수를 조사한 결과 대형 건물의 12%, 쇼핑센터의 7.7%에서 레지오넬라균이 검출됐다. 레지오넬라증은 다른 냉방병과 증상이 비슷하지만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폐렴·신부전으로 악화될 수 있다. 선우성 교수는 “레지오넬라균 감염은 고령자에게 치명적이다. 에어컨을 자주 이용한 사람 중 열이 38도 이상으로 오르고 가래·기침을 호소하면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레지오넬라증을 제외한 대부분의 냉방병 증상은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 선우성 교수는 “가벼운 감기 같은 증상이 생기면 창문을 열어 실내 환기를 시키고 긴 옷을 입어 몸을 따듯하게 하며 마사지를 해 혈액 순환을 도와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냉방병을 예방하려면 ▶찬바람을 직접 쐬지 않도록 얇은 겉옷을 입고 ▶실내외 온도는 5도 이상 차이 나지 않게 하며 ▶오전 10시~오후 9시에 하루 3번, 30분씩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에어컨 필터는 2주에 한 번 청소하는 게 도움이 된다.
조비룡 교수는 “열대야로 잠을 설쳐 신체 리듬이 깨져 면역력이 떨어지면 냉방병에 더 잘 노출된다. 면역력을 유지하려면 규칙적인 수면·식사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민영·박정렬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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